인간이 하루를 사는데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을 7가지만 말해보라는 질문에, 중국인들은 이렇게 답했다.
"하루를 사는 데 없어서는 안될 7가지 생활 필수품은 땔감,쌀,기름,소금,장(醬),식초,차(茶)이다"
(開門七件事,柴米油鹽醬醋茶)
송대의 오자목이 쓴 <몽량록(夢粱錄)>에 나오는 구절이 여전히 오늘날 "생활필수품"의 뜻으로 전의 되어 쓰이고 있다.
송(宋)나라때의 식견임을 감안 하더라도 7가지 중에 6가지가 먹을 것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더 주목할 만한 점은 '차'가 랭킹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중국은 과연 '차'의 나라다.그것도 생활속 음료로서의 차문화를 구현하고 있다.그냥 물마시듯 마시고 있는데, 물론 지역과 생활습관에 따라 차를 즐겨 마시지 않는 중국인들도 많이 있다.
차잎을 잘 볶고, 잔을 데우고, 향을 음미하고, 차를 마시는 셋트화 된 과정,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차도(茶道)문화는 최근 몇년새 대만이나 홍콩에서 역수입 된 현상일 뿐이다.불과 10여년전만 해도 그 흔한 찻집 하나 찾기 어려웠다.
문헌 기록에만 의거 한다고 해도 중국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2천년이나 된다. 차는 한(漢)이후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서서히 중국인 의 생활속에 싹텃고, 당(唐)때의 불교문화와 접목을 하면서 제자리를 잡았고, 송(宋)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오늘날 보편화 되어 있는 차문화는 '한족'의 차문화라고 단언해도 좋다. 비록 전세계 차의 기원지가 소수민족들이 많이 사는 윈난(雲南)성과 구이조우(貴洲)성에 걸쳐있는 윈구이(雲貴) 고원이지만 말이다.소수민족의 차문화는 주로 본래의 자기민족 차문화에 한족의 차문화를 흡수하여 발전시킨 형태이다.
한족의 차문화가 다분히 유교나 불교같은 사상적 영향과 봉건제도의 영향(조공품으로서의 차 때문에)에 의해 발전해 왔다면, 소수민족의 차문화는 '생태환경적 요인'에 의해 생겨난 경우가 많다.대표적인 사례로 유목민족들이 고원과 초원에서 생리적 열량을 높이기 위해 차에 유제품을 섞어 마신 경우를 들 수 있다.
여러 소수민족들의 차문화 가운데 바이족(白族)의 차문화를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사는 지역이 옛날'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리는 중요한 차무역의 핵심 지역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이때문에 이 지역 차문화는 어느 정도 한족의 차문화와는 다른 복합적 문화 양식을 띄고 있다.
천룡팔부(天龍八部)의 대리국(大理國)
쿤밍(昆明)에서 기차로 8시간, 고속도로로는 5시간 정도 서북쪽으로 달려가면, 중국 유일의 바이족(白族) 자치주인 다리(大理)주가 나온다. 커다란 산맥으로 둘러쌓인 덕분에 당(唐)나라때는 남조(南朝), 송(宋)나라때는 대리국(大理國)이라 부리며, 1253년 원(元)에 위해 지배당할 때까지 500여년간 독립된 국가를 유지했던 곳이다. 쓰촨(四川)과 신쟝(新藏), 윈난(雲南)의 접경지대인 동시에 인도나 네팔로 통하는 길목으로 청(淸)나라때부터 ‘남쪽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유명한 김용(金庸)의 무협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속에 나오는 ‘대리국’이 바로 이곳이다. 다리(大理)를 널리 알려줬다는 공로로 시(市)에서는 그를 ‘명예시민’으로 위촉했다고 한다. 다리(大理)에 있는 창산(倉山)에서 나는 돌이 너무 아름다워 당(唐)나라때부터 중원의 한족들에게 조공을 하였는데, 우리가 건축재로 쓰는 그 대리석(大理石)이 바로 이곳 지명 때문에 명사화 된 것이다.
중국 바이족(白族)의 80%가 이곳에서 산다. 한족에게 흰색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경극에서 백색얼굴 분장은 ‘교활함’을 나타내며, 정치적으로는 ‘반혁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중국내 소수민족중 바이족(白族)만이 조선족과 함께 흰색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한다.
이곳의 기후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15도 정도로 비교적 쾌적하지만, 겨울이 되면 높은 두 산맥사이로 매섭게 부는 인도양 계절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많아 조금은 춥고, 호수가 많아 습하며, 여름이면 분지라는 특성상 약간은 덥기도 하다. 높은 해발(1970m)임에도 여의도면적의 30배에 달하는 (252 평방km) 얼하이(洱海)라는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어 산과 호수, 분지라는 다양한 자연풍경을 일컬어 거센 바람, 온화한 기후에서의 다양한 꽃, 높은산의 눈, 호수에 비치는 달, 즉 풍화설월(風花雪月)의 풍경화 같은 모습이라 표현한다.
손님을 위한 퍼포먼스 , 싼다오차(三道茶)
바이족(白族)은 명절이나, 생일, 혼인등의 경사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있다. 이들은 차 마시길 좋아했다는 기록은 만서<蠻書>에서도 볼 수 있다. 바이족(白族)이 손님을 맞이 할 때는 늘 싼다오차(三道茶)로 대접을 하는데, 원래는 차잎을 볶아서 우려내기 때문에 카오차(烤茶)라 불린다. 차를 우려내는 방법은 먼저 화로위에 삼바리를 놓고, 그 위에 찻주전자를 올려놓아 가열을 하는데 멀리서 찾아온 손님과 회포를 푸는 동안 적당히 데워진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서서히 흔들면서 볶는다. 찻잎이 구워져 황색으로 변할 때쯤 물을 조금 넣는다. 이미 잔뜩 뜨거워진 주전자에 물이 닿으면 ‘칙’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이 끓으면서 거품이 올라오게 된다.
‘소리’가 있고, ‘볼거리(거품)’가 있고, ‘향(찻잎)’이 있으니, 고기와 술이 없어도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퍼포먼스인 셈이다. 끓는 거품이 넘치기 전에 물을 더 부어 한번 더 끓이고 나서 찻잔에 반정도만 따라 마신다. 바이족(白族)들은 “술은 가득따라야 맛이지만, 차는 가득따라 마시면 손님에게 부담이 되므로 상대를 업신여기는 꼴이 된다.”라고 여겨 차를 마실때는 조금씩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시게 되는데, 보통 세번정도(三道) 우려 마시게 되어 싼다오차(三道茶)라 부르게 되었다.
싼다오차(三道茶)의 철학 “고생끝에 낙이온다”
싼다오차(三道茶)는 세가지 맛으로 구분된다. 쓴맛, 단맛, 뒷맛이다. 첫번째(一道), 차를 볶아서 바로 우려 마시니 쓴맛이 난다. 두번째(二道), 조금 큰 찻잔에 호두, 흑설탕, 꿀, 튀밥등을 넣어 마시는데, 그 맛이 달다. 세번째(三道), 역시 찻잔안에 산초나무열매, 생강, 계피, 꿀등을 넣어 마시는데, 아린맛, 매운맛, 계피향맛, 단맛등이 어우러져 향긋한 ‘뒷맛’이 난다. 실제로는 계피향이 나는 단맛에 가깝다. ‘쓴맛’, ‘단맛’의 앞선 맛을 다시 상기시키는 ‘뒷맛’은 무언가 우리에게 익숙한 느낌의 구조가 아닌가?
싼다오차(三道茶)에는 바이족(白族)의 인생과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는 셈이다. 먼저, 쓴맛(苦)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어로 ‘고생하다’라는 뜻의 츠쿠(吃苦)라는 표현을 쓰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생에서 ‘고생’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있겠는가? 그 다음은, 단맛(甜). ‘고생끝에 낙이온다’는 의미로 우리의 삶에서 이유있고, 준비된 ‘고생의 쓴맛’은 단맛을 더욱 달콤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뒷맛’의 의미는 무엇을까? 아무 노력없이, 또는 아무런 고난없이 성공하려 하지 말라는 인생철학원리를 늘 ‘음미(回味)’하며 기억하라는 충고이다. 이처럼 ‘문화’를 마시고 ‘철학’을 마시니 가히 도(道)가 통한다 할 수 있겠다.
낯선 문화는 좋은 경험입니다.
중국음식&음식남녀 | 음식남녀 blog.naver.com/walwal1/60002429660
2007.4.15 sanm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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