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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풍요롭게/철학 종교일반

최부득선배님의 단오날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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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날의 환상

 

단오라 합니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처녀들이 그네를 타며 뭇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날입니다.

 

중국에서는 굴원을 기리기 위해 종쯔를 먹는 날입니다.

환상이 겹칩니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랄 때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입니다.

 

내 마음 안에 담긴 어여쁜 꽃송이가 있습니다.

네모 난 상자 안에 조용히 담긴 붉은 꽃잎이

어쩌면 지난 날 우리들의 처녀입니다.

하늘을 향해 폴싹거리는 그네는 이제 댕기만 남아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흑백파노라마사진에 남은

붉은 댕기꽃입니다.

 

종쯔가 굴원의 머리통이 되고

강바닥에는 흩어져버린 머리통으로 몰려드는

고기떼가 까맣습니다.

그 물아래 멈춰진 듯 가볍게 흔들리는

빈 그네가 있습니다

 

댕기는 물 바닥에 내려앉아

금실만 반짝입니다.

그 많던 물고기는 다 어디로 가고

쓸쓸한 물거미 한 마리

두리번거리며 쏜살같이 움직이다 턱 멈춥니다.

이 두려움만 남은 가슴이 철렁합니다.

 

종쯔는 다시 창포 잎에 머리를 감고

굴원은 물 속 깊은 영혼 너머에서

그네를 탑니다.

이천 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화려한 비단 옷을 걸치고……

꾹 다문 입.

(그가 과연 굴원일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 마침 그네가 웃습니다.

물 분자들이 소스라치며 부글부글 따라 웃습니다.

그네에서는 작은 분홍신발 한 짝 떨어져서

아주 아득히 멀리 날아갑니다.

 

오늘 단오랍니다.

그네를 탈까요 ?  종쯔를 먹을까요 ?

다 말고

창포로 머리를 감으세요.

그런 후

고요히 정좌하여

옛날

붉은 댕기 그 처녀 수줍은 볼을

떠올려 보세요.

 

2007. 6. 18. 남경 가는 기차 안에서 쓰고

다음 날 상해 오는 기차 안에서 고쳐 쓰다.

 

빈손 최부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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