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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문익점보다 800년 빠른 백제의 면직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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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문익점보다 800년 빠른 백제의 면직물 발견
보존상태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 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국내 최고의 면직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폭 2cm, 길이 약12cm 가량의 이 면직물은 1999년 능산리사지 6차 발굴조사 때 발견된 이후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백제 중흥을 꿈꾸다 -능산리사지’ 특별전에 처음 공개되었다.

면직물의 재료가 되는 목화는 역사적으로 고려 말인 14세기 후반 경에 문익점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됐다. 값비싼 비단에 비해 싸고 따뜻한 면직물의 보급은 당시로서는 섬유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정색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어 있는 것으로 그 시기는 고려 말 공민왕 때이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사지 서쪽 돌다리의 백제 유적층에서 출토된 면직물은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창왕명사리감’의 제작년도가 서기567년임을 감안할 때, 고려의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처음으로 갖고 들어왔다는 14세기에 비해 무려 800년이나 앞서는 국내 최고의 면직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직물은 고대의 일반적인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로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으며, 이 직물을 통해 백제인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국내에서 출토된 고직물(古織物)의 경우,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출토의 직물처럼 잘 남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극히 단편적 자료들이며 금속기 등 다른 유물에 고착되거나 경화된 상태로 남아있어 직물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유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통한 종단면 관찰 결과, 면섬유의 특징이 뚜렷이 관찰되어 식물성 셀룰로오즈 섬유로 짜여진 ‘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 유물은 목화에서 실을 뽑아 독특한 방법으로 직조한 고대 직물로써 당시의 제직기술과 복식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백제 면직물에 대한 조사 ․ 분석은 국립부여박물관 보존과학팀과, MOU기관인 한국전통문화학교(심연옥, 정용재 교수)와 공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금년 10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뉴스타운 Newstown 양승용기자2010.7.15
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main_cert.asp?P_Index=88789

 

800년 앞선 백제시대 면직물 확인

'문익점의 목화씨' 신화가 깨졌다. 고려말 문신 문익점(1329~1398)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숨겨 들어와 키우면서 이 땅에서 무명천(면직물)을 처음 짜기 시작했다는 교과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됐다.

최근 충남 부여 능산리의 6세기 백제 절터에서 나온 백제산 직물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면직물 실물로 확인됐다. 국내 면직물의 역사가 800년 이상 앞당겨지게 된 것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최근 능산리 절터 출토품 분석 과정에서 1999년 조사 당시 유적 저습지에서 목기류와 함께 나온 직물 덩어리(폭 2㎝, 길이 약 12㎝·사진)가 국내 최고의 면직물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발표했다.

박물관 쪽은 이 직물이 6겹으로 접힌 덩어리 모양으로,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심연옥·정용재 교수팀과 함께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종단면을 살펴본 결과 식물성 셀룰로오스 섬유의 특징인 완두콩 형상의 결정 구조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같은 출토 층위에서 567년 백제 창왕 때 만든 사리감이 나와 당시 백제의 직물임이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현재까지 보고된 국내 최고 면직물은 경북 안동의 고려 말 태사자 묘에서 나온 소가죽 장화 안감에 붙은 직물이다.

심 교수는 "씨실을 강하게 꼬아 쓰는 독창적 직조수법 등으로 미뤄 당시 외국에서 백제로 목화씨가 전해졌으며, 면직물 자체를 백제에서 생산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목화는 고대 중앙아시아, 인도에서 비단길 등을 거쳐 중국, 한반도에 전해졌다. 국내 재배와 생산은 < 고려사 > 기록 등에 따라 문익점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었으나 학계 일부에서는 이론을 제기해왔다.

< 삼국사기 > 에 통일신라 경문왕 9년(869)에 면직물의 중국 명칭인 백첩포 40승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전하고, 당의 사서 < 한원 > 에도 고구려에서 백첩포를 짰다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인된 백제산 면직물은 옛 기록을 실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 면직물은 박물관의 능산리사지 특별전(8월15일까지)에 전시중이며 분석 성과는 오는 10월 박물관 국제학술심포지엄에도 보고될 예정이다.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30555.html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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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면에 대한 추가 사진 모음

 

 목화의 성장 과정

 

면cotton의 단면사진과 측면사진

 

면의  단면구조

 

면(cotton,중국어 棉미앤,일본어 綿 )에 대한 한국내 기원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심교수는 외국에서 백제로 목화가 전해지고 백제에서 제직했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동일형태의 (위사에서 좌,우꼬임을 준 실을 사용했기에) 면직물이 아직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은 점을 들어 백제에서 제직한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 그랬으면 참으로 백제인들의 창의력이 뛰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무역은 있었다. 면직물의 역사를 꼭 한국에서 제직된 것이냐 아니냐로 본다면 면실을 수입했을 수도 있고 직접 재배해서 실을 뽑아 제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다.면은 인도가 원산지로 기원전 800년부터 목화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거의 2000년이 앞선 것이다 . 어떤 경로를 통해 실이든 원단(직물)이든 수입이 될 수 있고 그걸 활용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로서는 목화부터 면직물까지 항상 문익점이라는 붓뚜껑의 목화씨를 역사에서 배워왔는데, 이제 그 역사의 기록에 변화를 주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변화인 것이다.

 

2010.7.16 산만정풍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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