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네이버 지식인에서 퍼 온 것이다. 정말 잘 썼다. 필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아쉽다. (들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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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1998년 7월 조선일보가 복거일 씨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1998)라는 저서를 소개하면서부터였다. 복거일 씨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서 민족어를 버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론을 남영신 씨가 내놓았고 이어서 한영우, 박이문, 함재봉, 최원식, 이윤기 정과리 씨 등이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데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각기 제시하였다.
1998년 7월 한 달 동안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벌어졌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는데 이미 1996년에
복거일 씨는 영어가 1세기 안에 지구의 공용어가 될 것임을 언급하였다. 즉 1996년 3월 5일자 조선일보 창간 기획 특집에서 복거일 씨는
100년 이내에 지구의 언어가 영어로 통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인수위원회 활동을 보고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경제1분과위원회는 인천국제공항
주변지역을 세계자유도시로 건설하고 그 지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다는 자유도시 개발 구상을 보고하였다. 인천국제공항 주변지역에서의 영어
공용어 지정은 그 후 실천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3년 뒤인 2001년 제주 국제자유도시화 계획에서 비슷한 구상이 다시 나타난다.
복거일 씨 외에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을 낸 이로는 고종석 씨를 들 수 있다. 그는 저서 '감염된 언어'(1999)에서 언어는 단순히
도구만은 아니지만 편리한 도구로서 공유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99년 11월 초에 교육방송 텔레비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는데 교육방송의 여론조사 결과는
62.4%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1999년 11월 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자유기업센터와 한국소설가협회는
공동으로 작가포럼을 개최하였는데 정을병 한국소설가협회 회장은 '21세기와 제2 공용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정을병 씨 주장에 대해 백시종 씨는 지지하였고 신상웅 씨는 반대하였다.
2000년에 들어 복거일 씨는 신동아 3월호에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는 주장의 글을 실었고 4월호에 정시호 교수가 반박하는 글을
기고했다.
한편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조선일보가 1999년 7월 영어 공용어화 논쟁을 불붙이기 직전인 1999년 6월에
일본의 저명한 언론인 후나바시 요이치 씨가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언론에 기고하였고
이 주장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2000년 1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자문기관이었던 '21세기 일본의 구상'은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지정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한편 같은 해인 2000년 5월 문부상 자문기관인 국어심의회는 영어
조기교육론에 쐐기를 박으면서 적어도 10세까지는 일본어 학습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본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논쟁만 불러일으켰을 뿐 언어정책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동아일보는 2000년 1월 동아닷컴과 리서치앤리서치사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하자는 안에 대해 의견 조사를 한 결과
63.1%가 찬성, 36.9%가 반대했다고 밝혔다. 2000년 11월에 주간조선은 3,252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조사를 한 결과 59.25%가
영어 공용어화를 지지하고, 41.27%가 반대했으며, 5.78%가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고 발표했다.
한편 건설교통부와 제주도로부터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개발 기본계획' 연구 용역을 맡은 미국의 존스랑라살사는 제주도를 국제 자유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주도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2000년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제주자유도시 정책기획단에서도 받아들여
발표하게 되었는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정책으로 채택되지는 못하였으며 2001년 12월 국회에 제출된 제주도 개발 관련 법안에 따르면
영어로 된 공문서를 관공서에 제출할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는 정도에 그쳤다.
흥미있는 사실은 제주 국제자유도시 지원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주한미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소장이 한국의 정체성, 특히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점에서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제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오히려 주요한 미국 인사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거일(1998)과 고종석(1999)이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을 한 이래 이에 대한 체계적인 반론을 저서로 펴낸 이들이 나타났다.
한학성(2000)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김영명(2000) 『나는 고발한다』, 정시호(2000) 『21세기의 세계 언어전쟁』이 거의
동시에 나왔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이 옳지 않음을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 입증해 보이고자 하였다.
정시호(2000)는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국가이면서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이외는 없음을 말하고,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영어 공용어론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영어 하나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견해에 반대한다. 동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
중국어와 스페인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업 활동과 무역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그 역할이 과대하게 평가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표명한다. 그리고 일부 논자들이 예견하듯이 그렇게 쉽게 민족어가 사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역설한다. 일본과
중국이 일본어, 중국어를 세계에 퍼뜨리려는 야심찬 계획을 생각할 때 영어가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고 지레 추측하는 것은 위험함을 경고한다.
정시호(2000)는 또 인터넷은 세계의 지역화를 촉진시킬 것이기 때문에 영어가 인터넷의 전용 언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한편
재외동포와 북한동포들을 고려해서라도 영어 공용어화는 있을 수 없으며 영어를 잘하는 계층과 영어를 못하는 계층 간의 심각한 갈등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제기한다. 궁극적으로 언어는 화자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인류 전체의 문화를 위해서도
언어의 다양성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데 대해서 반대한다.
한학성(2000)은 매우 논리적으로 복거일(1998)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는데 복거일의 영어 공용어 개념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언어 교체론임을 지적하였다. 또 영어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영어 공용어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영어 공용어화로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임을 말하였다. 즉 단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만 하면
모두가 갑자기 영어에 능통하게 될 것 같이 말했다면 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도 이 점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론 조사에서
영어 공용어화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보았다. 즉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전 국민으로 하여금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준다면 영어 공용어화는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영어 공용어화를 찬성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영어
교육의 획기적 개혁 없이는 영어 공용어화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 미리 강조되었다면 영어 공용어화에 찬성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았을 거라고
한학성(2000)은 보았다. 한학성은 덴마크 등의 예를 들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고도 일반 국민들이 얼마든지 영어를 잘할 수 있으며
그런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명(2000)은 영어 공용어화론을 매우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는데 우선 그는 우리나라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영어가 공용어가 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있지 않기 때문이고, 영어 잘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영어를 공용어로
삼으려면 엄청난 비용과 희생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영명(2000)은 한학성(2000)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바뀐 말임을 지적한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공용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해서 공용어가 되는 것인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영어가 공용어가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영명(2000)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공용어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본다. 즉,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공용어라는 것은
공용어가 아니고 단지 외국어 남용일 뿐이라고 그는 보는 것이다. 물론 김영명(2000)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지 않고 그런 정도로 쓰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 왜냐하면 영어를 남용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한국어가 영어에 물들어 병들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조동일(2001)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은 이들을 종합하여 한층 발전시킨 것이다. 우선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파헤쳐 보였다. 또 영어는 어디까지나 외국어로서 익혀야 할 것이지 모국어로 삼자는 것은 망상임을 지적하였다. 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 즉 교통어의 존재는 필요하지만 민족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함을 역설하였다.
반대 의견도 나타났다. 김경일(2001)의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는 영어 공용어화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기업이 먼저 나서서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도 속을 들여다 보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복거일 씨와 같이 궁극적으로 민족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이자는 주장과 민족어를 유지하되 영어를 제2의 언어로 사용하자는 주장은 분명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영어 공용어화에 반대하는 논자들도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제주 같은 특정 지역이나 외교통상부 같은 특정 부처에 한해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입장도 있고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영어 공용어화에 반대하는 이들도 대체로 영어의 효용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1996년경부터 시작된, 영어 공용어화 주장에 대한 찬반 양론의 대립에 대해 살펴보았다.
2.2. 공용어의 개념
공용어를 공용어(公用語)로 이해하기도 하고 공용어(共用語)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용어(共用語)라는 것은 국어사전에 있지 아니하다. 공용어는 공용어(公用語)이지 공용어(共用語)가 아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용어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
2. 국제회의나 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
첫째, 공용어(公用語)는 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공식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행정, 입법, 사법 등의 절차에서 쓰이는
언어를 말한다.
둘째, 국제회의나 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를 말한다. 유엔의 공용어는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6개
언어이다. (2005년부터는 나도 중국어랑 프랑스어 중 선택해서 공부해야지~~)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주장은 공용어의 두 가지 뜻 중에서 첫째 것과 관련되므로 주로 첫째 뜻만을 놓고 논의하기로
한다.
공용어라는 것은 다언어 국가에서 필요한 개념이다. 다언어 국가라는 것은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국가를 가리킨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다언어
국가이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은 인종 전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여서 다양한 언어들이 쓰이고 있다. 러시아도
워낙 큰 나라여서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토가 큰 나라만 다양한 언어가 쓰이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타이,
캄보디아, 크메르 등에도 다양한 언어가 쓰이고 있다.
이에 반해서 한국은 대단히 특이한 나라에 속한다. 예로부터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였다. 단일민족국가이기 때문에 단일언어국가였다. 즉 한국어만이
사용되기 때문에 한국어가 곧 공용어였다. 비록 화교들이 살고 있고 미군이 상주하고 있지만 이들의 수는 워낙 미미해서 보통 무시된다. 화교들은
중국어를 한국에서 써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미군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상주하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많은 상사 주재원과 외교관
가정에서도 그들의 모국어가 쓰일 것이지만 그것은 논외로 간주된다.
이렇게 한국은 대대로 단일언어국가였으므로 언어 문제는 오직 표준어 정립의 문제였지 여러 언어 사이의 문제는 없었다. 물론 한국도 예외적인
시기가 있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한국어 사용이 억제된 시기가 있었다. 당시 공용어는
일본어로 바뀌었다. 학교에서 한국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인위적인 국가 정책에 따라 일본어를 습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 침략
시기에 한해 한국에는 두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이한 상황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일본어의 세력은 급속히 쇠퇴하고 한국어에 스며 들어 있던 일본어 어휘 요소들도 꾸준히 줄어들게 된다.
한국과 달리 언어가 여럿인 나라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언어 문제라는 것이 생긴다. 이른바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요구가 따르는데 그들은
공문서에 자기들이 쓰는 소수 언어를 써 달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운전 면허 시험을 볼 때 소수 언어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이런 요구를 국가가 들어주게 되면 그 소수 언어는 공용어에 들게 된다.
인도의 경우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매년 시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영어가 공무원 공채 시험의 필수 과목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다양한 인도 고유 언어 교육의 확산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응시생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지구상에는 언어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키프로스 주민들의 80%가 그리스 본토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20%가량이 터키어를 사용한다. 키프로스 분쟁은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 사이의 갈등이 핵심이다. 터키에서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문제가 심각하다. 티베트는 중국에 종속당하기 전까지 독립국가였다. 독자 언어와 문자를 써 왔다. 중국에 종속당한 것은 청(淸:
1644-1912)의 등장 이후다. 벨기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북부의 플라망족과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남부의 왈론족으로 구성되었는데 늘 분쟁의
소지를 안고 살고 있고 브뤼셀의 남쪽 워털루 부근을 기준으로 하는 명확한 언어 경계가 존재한다. 이북에서는 플라망어를, 이남에서는 켈트족의
후예들이 프랑스어와 비슷한 왈론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 세계 여러 나라를 모국어와 공용어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분류해 보자. 아래 분류는 조동일(2001)이 나눈 방법이다.
(가) 단일 모국어가 국어이고 공용어인 경우 : 한국
(나) 국민 다수가 사용하는 모국어를 국어로 지정해 공용어로 사용하고 그것과는
다른 지역어나 소수민족어는 배격하는 경우 : 터키, 이란, 영국, 프랑스 등
(다) 비슷한 비중을 가진 모국어가 여럿 공존해 그 어느
것을 국어로 하지 못하고 각기 공용어로 하는 경우 :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키프로스
(라) 공존하고 있는 여러
모국어 가운데 어느 하나를 국어로 지정했지만 공용어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가 사실상의 공용어 노릇을 하는 경우 : 케냐,
인도, 필리핀
(마) 공존하고 있는 여러 모국어 가운데 하나는 국어로, 다른 몇 가지는 공용어로 지정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무력해서
모국어는 아닌 외국어가 사실상의 공용어 노릇을 하는 경우 : 싱가포르
(바) 여러 모국어 가운데 어느 하나를 국어나 공용어로 지정하지
못해 사실상의 공용어만 있는 경우 : 미국
(나)의 경우 소수민족어는 소수 언어라는 이유로 공용어가 되지 못한다. 수적 열세 때문에 공용어가 되지 못한 경우이다. 한국의 경우 소수의
화교들, 그리고 미군 가족들 등은 가정에서 또는 그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쓰지만 한국의 공용어인 한국어와 비교할 때 세력이 극히
미미하여 공용어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다.
(다)의 경우가 대표적인 다공용어 사례이다. 한 나라에서 공용어를 둘 또는 셋 이상을 채택한 경우이다. 주로 지역에 따라서 사용 언어가
다른 특징이 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문서는 여러 공용어를 동시에 쓰고 있다. 예를 들어 화폐에는 여러 언어가 다 표시되어 있다. 이들
나라에서 공용어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에서 흥미있는 것은 공용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그 국가의 여러 공용어를 다 구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정된 여러 공용어 중에서 하나만 할 줄 아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에서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지정한다고 해서 온
국민이 영어를 다 잘 구사할 줄 알게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라)나 (마)의 특징은 다민족 국가이면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라는 것이다. 모두 영국의 지배를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영어는 국민들의
모국어가 아니면서 영어가 공용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도 만일 다민족 국가였다면 일제 식민지 지배를 벗어났어도 일본어가 공용어로 계속
쓰였을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다는 것은 (가)에서 (바)까지의 여섯 가지의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모국어란 한국어이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들의 모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것은 대량의 인위적인 식민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즉 영어 원어민을 대규모로 한국 국민으로 받아들이거나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 여성들을 한국에 와서 한국 남성들과 결혼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에 걸쳐 이루어져야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번에는 현재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가들이 어떤 나라인지를 살펴보자.
아시아
브루나이 스리랑카 싱가포르 인도 파키스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오세아니아
나우루 뉴질랜드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 바누아투 사모아
솔로몬제도 오스트레일리아 키리바시 통가 투발루 팔라우 피지
유럽
몰타 바티칸 아일랜드 영국 키프로스
아프리카
가나 감비아 나미비아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라이베리아 레소토 말라위 모리셔스
보츠와나 세이셸 스와질란드 시에라리온 우간다 잠비아 짐바브웨 케냐 탄자니아
아메리카
가이아나 그레나다 도미니카 미국 바베이도스 바하마 벨리즈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세인트키츠네비스 앤티가바부다 자메이카 캐나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이들 나라들 중에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 있는 나라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영국 등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이거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카리브해와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들이다. 특히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유럽의 각국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에 대해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벨기에, 스페인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 반해 스웨덴, 핀란드 등은 상당히 호의적인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2.3.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의 의미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영어를 한국의 유일한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과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한국어 대신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대체하자는 생각은 워낙 현실성이 없기에 제쳐 두고 후자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만일 한국어와 영어를 공히 한국의 공용어로 지정한다면 한국은 복수 공용어 국가가 된다. 지구상에 복수 공용어 국가로는 스위스, 캐나다,
벨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과 한국은 매우 상황이 다르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이
공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동일한 지역에서 이들 언어가 다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스위스는 독일어 사용 지역, 프랑스어 사용 지역,
이탈리아어 사용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독일어 사용 지역에서는 독일어가 사용되고, 프랑스어 사용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사용된다. 캐나다도
영어 사용 지역과 프랑스어 사용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특정 지역에서 두 언어가 다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엄격하게 한 언어만 사용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독일어 사용 지역에서는 독일어가 주로 쓰이고 프랑스어 사용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주로
쓰인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어를 한국어와 아울러 공용어로 지정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을 한국어 사용 지역과 영어 사용 지역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지역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 전국에 걸쳐 한국어와 영어를 다 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글말과 입말로
나누어 살펴보자.
모든 법령과 공문서는 두 언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한국어로만 작성되었던 모든 법령은 한국어 외에 영어로도 작성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다루어지는 법률안, 청원 등도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작성되어야 한다. 법원에서 쓰이는 소장, 재판 기록, 판결문 등도 두 언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모든 공무원은 문서를 작성해서 시행할 때에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해야 한다.
모든 교과서는 외국어 과목을 제외하고는 두 언어로 쓰여야 한다. 예컨대 물리, 화학, 수학 등의 교과서는 한국어로 된 교과서와 영어로 된
교과서 두 가지로 만들어야 한다.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 사람에 따라서 한국어 교과서를 가진 이와 영어 교과서를 쓰는 이로 나뉠 수는 없을
것이고, 학교마다 어느 언어로 된 교과서를 쓸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과목마다 언어를 따로 따로 지정할 것인지 아니면 한 학교 안에서는
언어를 통일할 것인지도 문제가 될 것이다.
모든 법령, 재판 기록, 공문서를 두 언어로 작성하는 것이 한국어와 영어를 복수 공용어로 채택할 때 생기는 일인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필요성과 가능성의 두 측면을 놓고 따져 볼 수 있다. 우선 필요한지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한국어 외에 영어로 모든 법령, 재판 기록, 공문서를
작성해 놓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만일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면 진작에 그렇게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한국어만으로도 충분했다면 지금부터 영어 문서를 추가하는 것이 과연 필요하냐는 의문이 생긴다.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전 공무원이 문서를 두 언어로 작성해야 한다고 할 때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공무원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물론 한시적으로 영어 작문에 능통한 사람이 번역만 전문적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로 작문하지 못하는
공무원들의 문서를 다 영어로 번역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영어 작문 전문가가 필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입말의 경우는 글말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다. 글말로서의 문서는 두 가지로 쓰고자 할 경우 들여야 할 수고가 번거로워서 그렇지 두 가지로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입말의 경우는 소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입말의 특성상 두 언어로 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어로 먼저 말한
뒤 이어서 영어로 말하고 다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한국어로 한 단락을 말한 뒤 같은 내용을 영어로 말하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아예 한국어든지 영어든지 한 언어로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듣는 사람이 두 언어를 다 이해한다고 보면 연설을 한 단락은 한국어로 하다가 다음 단락은 영어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회 연설에서 국회의원이 한 문장을 한국어로 말하고 이어서 같은 문장을 영어로 말하는 식으로 발언한다고 하자. 과연 영어로 말해
줘야 할 대상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한 외교사절이나 외국인들도 한국의 국회에서
오가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외국인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나라가 있는가? 두 언어로 질의, 답변할 때의 의사 진행의
비능률성은 무시해도 좋을 것인가? 그리고 가능성도 문제이다. 두 언어를 공히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때에 동일한 지역에서 두 가지 공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불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대내적으로 같은 국민들 사이에서 한국어 외의 새로운 언어를 추가로 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고 따라서 논의할 필요조차 찾기
어렵다. 차라리 한국어를 완전히 없애고 영어로 대체하여 하나의 공용어를 가지면 모르되 두 언어를 동시에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공용어는 하나라야 한다고 해서 한국어를 공용어의 지위에서 내몰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 역시 도무지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음은 물론이다.
3. 맺음말
이제까지 논의한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결론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논의는 공용어의 개념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이루어져 왔다. 공용어라는 말 자체가 다언어사회에서 필요한 것이었는데 한국은 다언어사회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공용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 공용어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막연한 상태에서 갖가지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그저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좀더 많이 사용하자는 정도이고 그것은 공용어가 아니라 하나의 유력한 외국어일
뿐이다.
영어가 현재 세계에서 여러 국가 사람끼리 만났을 때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한 영어의
효용을 인정하여 사람들은 영어를 교통어라고 부르기도 하고 국제어라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 세계어라 하기도 한다. 이 교통어, 국제어, 세계어의
개념을 공용어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가 세계의 교통어, 국제어, 세계어라 하더라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외국어일 뿐이지 한국이라는
나라의 공용어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에서 언어를 제거하면 남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의 오랜 전통과 고유한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언어를 지켜 나가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의 핵심에 있다. 민족문화의 바탕 위에서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대외적 교류를 위해 현재 세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경우에도 영어 한 언어에만 온 국민이 매달리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나 미국이 세계를 제패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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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2001). 『나는 왜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 중앙 M&B.
(출처 : '제주도를 영어와 한국어 공용화 지역으로 하면,,,'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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