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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풍요롭게/문화 예술 방송

부처님 오신날 연등놀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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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부처님 오신날 어김없이 서울에서 연등놀이가 열렸네요.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사진으로나마 구경하시고, 연등놀이의 유래에 대해서도 잠시 머리에 담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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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놀이의 유래

부처님 시대는 공양의 한 방법으로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고 밤에는 등불을 밝히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였나 봅니다
그에 대한 모습은 유명한 일화인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부처님이 영취산에 계실때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정성과 발원으로 바친 등불만이 다른 모든 등불들이 꺼진 후에도 홀로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그 여인의 지극한 정성을 알고 "이 여인은 등불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며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여 등불공양을 함에도 그 마음이 지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지요
 
이러한 연등행사의 모습은 불교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동진의 승려인 법현이 인도를 다니면서 쓴 구법기행기(339-414년)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부처님오신날의 행사는 사찰만이 아니라 불상을 모신 수례를 화려하게 치장하여 읍내까지 순례한다고 하여 이미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축제행사로 발전되어 있던 것처럼 보이고 
 
중국으로 건너와서는 연등회란 이름으로 국가적인 의례로 자리잡아 세시풍속으로 남게 되었으며 당나라 때는 3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여 가무와 백회를 공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시대에는 신라경문왕 6년(866)과 진성여왕 4년(890) 정월 15일 때에 황룡사로 행사하여 연등을 켜고 꺼지지 않고록 간등(看燈)했다는 기록이 있고 진흥왕때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였던 시대였으므로 연등회는 팔관회와 함께 고려시대의 2대 명절로 정착이 되었고 나라에서는 연등도감이라는 기관을 두어 행사를 주관하게 하였으며 음력 정월보름이나 2월보름에 국왕과 온 백성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궁궐부터 시골까지 각자기 화려한 연등을 밝히고 잔치를 열어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23대 임금인 고종 32년(1245)때 무신정권의 수장이었던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이가 연등행사를 사월초파일에 시행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가 사월초파일에 거행되는 기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시대때 쓴 고려사(세종 31년 -문종 1년,1449-1451)에 보면 공민왕때 사월초파일날 풍속으로 호기(呼旗)놀이가 행해졌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마을 아이들의 연등놀이의 하나 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숭상하여 나라에서 행하는 관청중심의 행사는 중지되었으나 민간에서는 아름다운 민속행사로 남아서 세시풍속으로 전승이 되었는데 ''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초파일에 앞서서 아이들이 등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잘라 등대를 매달아 기를 만들어 들고 장안을 돌아다니며 쌀이나 돈을 구하여 등 만드는 비용으로 쓰는 호기놀이가 성행하였으며 초파일 낮에는 절에가서 공양을 올리고, 저녁에는 집집마다 세운 등대에 자녀수대로 등을 밝혔으며, 밤에는 온장안의 남녀들이 등을 들고 나와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당시 한성의 경우 남산(잠두봉)에 올라 불야성을 이룬 시내거리를 구경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시골노인들은 잠두봉의 관등이 평생소원이었다고 하며 조선 성종때는 한성을 대표하는 열가지 경치인 한성십영(漢城十詠)중 하나로 종로의 연등구경을 꼽기도 했답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비록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치욕적인 역사를 살았으나 당시에도 관불의식과 제등행진은 계속되었는데 서울시내의 경우에는 광화문통 광장, 조선은행앞 광장, 그리고 장충단 공원(후에 경성부와 탑골공원으로 바뀜)에서 꽃으로 장식한 탄생불을 모시고 관불행사를 하였으며 저녁에는 공양올린 등에 불을 켜고 흰코끼리를 앞세워 종로-을지로-광화문을 도는 제등행진을 하였고
 
감격의 해방후에는 조계사-종로4가-을지로-시청앞-안국동-조계사를 도는 제등행진을 하였으며 그후에는 동국대에서 시작하여 종로-조계사까지 제등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75년 사월초파일이 국경일로 지정되자 그 이듬해인 1976년부터는 여의도광장에서 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진을 하였는데 그 행렬이 서울시내를 관통하다보니 1980년대는 대학생들이 이를 이용해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답니다
 
그리고 오늘날 모습의 연등축제가 시작된 것은 1996년부터로 제등행진 구간을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를 거쳐 조계사에 이르는 구간으로 대폭 축소하는 대신 조계사앞 우정국로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게 하였고 행사이름도 오늘날의 이름인 "연등행사"로 확정하였으며 불교문화마당과 어울림마당(연등법회), 대동(회향)한마당 등의 행사가 추가되는등 날로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외국인들이 참여가 늘어나 국제적인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글은 네이버의 블로그 오카시(삼순)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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