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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중국관심가는사건사고

떠오르는 중국의 차세대 새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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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공산당은 오는 10월 15일 17전대를 개최한다. 중국 관측통들은 17전대에서 이른바 ‘제5세대’ 지도부 가운데 누가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진출할지, 오는 2012년 누가 후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떠오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참에 미리 떠오르는 중국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상하이 지역 역시 이번 제17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여년간 중국 정치권력의 풍향계 역할을 했던 상하이로선 17전대에서 고위층 인사의 향배가 상하이의 성쇠, 나아가 중국 경제의 방향에 대한 가늠자가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 시장과 서기는 중국 최고 지도부로 부상하는 '약속된 자리'. 장쩌민 주석은 물론 주룽지(朱鎔基) 총리, 황쥐(黃菊) 부총리도 모두 상하이 시장 출신이다.
   상하이가 계속 중국 정치권력과 경제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될지 논란의 중심에는 지난 3 임명된 시진핑(習近平.54) 상하이 서기가 있다
. 당초 태자당(혁명원로 자제그룹) 선두주자로 5세대 후보로 꼽히던 서기는 상하이 서기를 맡은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때문에 17전대 정치국 상무위원단에 진입할 후보군에서 비켜 있다는 평을 들어왔다
.
   중국공산당내엔 최고 지도자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소 2 .(.) 이상의 서기를 거쳐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상당수 관측통들도 서기가 그렇게 빨리 자리를 움직이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보다는 정치국 위원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었다
.
   그러나 최근 베이징에서 서기가 서기와 함께 5세대 지도자 후보로 합류할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 5세대 지도부의 미래를 리커창(克强.52) 랴오닝 서기 한명에게 거는 것보다는 2 이상의 후보가 서로 경쟁 구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특히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직계로 주석과 지나치게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는 서기와는 달리 개혁파인 시중쉰(習仲勳) 전인대 부위원장의 장남인 서기는 모든 당내 파벌로부터 환영을 받는 인물이다
. 공청단 출신이면서 칭화방(淸華幇.칭화대 출신) 일원이기도 서기는 정치적 배경이나 친기업적 이미지가 부각될 그가 몇개월밖에 상하이 서기를 지냈다는 사실은 그다지 무게감 있는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
   홍콩 명보(明報) 27 소식통을 인용,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하게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한정(韓正.53) 상하이시장이 상하이 서기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 신문은 중국공산당이 17전대를 앞두고 조만간 시장의 서기직 승진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는 상하이 사회보장기금 비리 사건의 일단락과 동시에 최고지도부의 상하이에 대한 신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현재 사회보장기금 비리에 연루된 고위 간부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마무리된 상태로 천량위(陳良宇) 서기에 대한 처리 문제만 남아 있다. 3 임명돼 사회보장기금 사건의 처리를 맡은 서기의 역할도 거의 마무된 셈이다
.
   한때 좌천설까지 나왔던 시장은 지난해 9 천량위 해임 이후 서기직을 대리하면서 안정적으로 상하이 정국을 이끌어오다 지난 3 서기의 임명과 함께 다시 시장직을 계속해왔다
. 당시 중국 지도부는 시장에게비리 수사 강화상하이 정국 안정개혁개방 이미지 유지 세가지 과제를 부과하고 역량을 시험해본 결과 6개월간의 업무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공청단 출신으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경제통인 시장은 만원 지하철을 직접 타고 다니면서 시민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현장 행정으로 상하이 시민들로부터도 높은 인기를 받고 있다
.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지난주 헤드라인 기사로 `상하이의 새로운 조류' 조망하면서 서기 낙마 이후 상하이의 변화상을 격찬한 것도 서기와 시장에게는 17전대를 향한 서막이라고 있다.

 (이상은 (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의 내용을 정리한 것임. )

 

        

 시진핑                               이커치앙                                보시라이

 

       

 저우샤오촨                    상푸린                         로우지웨이

 

 

시진핑(习近平) : 중국공산당상하이시위서기, 1953년생, 칭화대 졸업, 2007년 3월 상하이시위상위, 위원,서기임명 

 

 ◇시진핑 = 혁명원로인 시중쉰(習仲勳) 전 전인대 부위원장의 막내아들로 보시라이 상무부장, 위정성 후베이성 서기와 함께 태자당 그룹의 대표주자. 동시에 칭화(淸華)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칭화방'의 일원이기도 하다.

부친 시중쉰은 1962년 펑더화이(彭德懷) 반당집단으로 몰려 숙청됐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78년 복권돼 광둥(廣東)성 서기로
덩샤오핑(鄧小平)에게 경제특구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던 인물.

태자당에 속하긴 하지만 어린 시절 부친이 사인방(四人幇)의 박해로 조사, 수감, 하방 생활을 한 탓에 유복하게 지내지 못했고 15세때엔 산시(陝西)성 오지에서 농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로인해 고위간부 자제이면서도 서민적 정서를 갖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다른 고위간부 자제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하방된 베이징 지식청년 가운데 처음으로 농촌대대 서기가 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1975년 부친의 복권과 함께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칭화대 공정화학과 졸업 후 국무원 판공청에서 겅뱌오(耿彪) 부총리 비서로 배치돼 일하다 1982년부터 베이징 근무를 포기하고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를 시작으로 20여년간 지방만을 돌며 근무해왔다.

40대 후반부터 푸젠(福建)성장, 저장(浙江)성장.서기를 지내면서 차세대 주자로 꼽히기 시작했다. 대만과 면한 동부 지방의 고위직을 지내면서 대만 자본을 유치하는 등 대만통으로 알려졌다. 또
상하이방의 주요 세력거점인 저장성 서기를 오래 지냈다는 점 때문에 범 상하이방의 일원으로도 분류되기도 한다.

2002년 저장성 서기가 된 후 5년만에 저장성을 중국에서 민간기업이 가장 발전한 성으로 키웠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이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서기가 비리 혐의로 축출되면서 지난 3월 상하이 서기로 임명됐다.

신화통신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언론은 최근 잇따라 특집기사를 통해 시 서기의 7개월 임기 동안 상하이가 안정을 되찾고 한층 조화롭고 살기 편한 도시가 됐다고 격찬한 바 있다.

확실하게 밀어주는 끈이 없다는 평을 들었던 시 서기는 오히려 이 점이 모든 계파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부각되며 후계자 후보로 급부상했다.

특이한 점은 중국의 유명가수였던 펑리위안(彭麗媛.45)과 부부 사이라는 점. 펑리위안은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소속 가무단 단원이자 베이징대 겸임교수를 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으면서도 부부 금슬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자당 출신이 배경이 돼 원로들을 극진하게 대우하고 군 간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우대해준 것이 입신의 배경이 됐다는 평이 있다.

  또 다른한 축으로 떠오른 지도자로는 현재 리아오닝성 당서기 리커치앙이다. 차세대 지도자중 시진핑과 가장 각축을 벌일 인물이다.

 

리커치앙(李克强): 현재 중앙 리아오닝성의 서기, 리아오닝성인대상위회 주임, 1955년생, 안후이 딩위앤, 베이징대졸업, 경제학박사

  

◇리커창 = 고향은 후 주석의 원적(原籍)과 같은 안후이(安徽)성이다. 안후이 딩위안(定遠)현의 당 간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졸업후 고향의 농업공사에 배치돼 농민 생활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리틀 후'라는 별명처럼 후 주석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후배로 성실함과 함께 절대 화를 내지 않고 몸가짐이 흐트러짐이 없는 점이 후 주석과 일맥상통하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인관계가 뛰어나며 학구적 자세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있으면 즉각 스스로를 책망한다"고 말해왔다.

문화대혁명 종료 후 대입시험 부활과 함께 1978년 23세의 나이로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 학생회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다 베이징대 공청단 서기로 근무할 때에는 학생회 주석 장웨이(張휘<火+韋)와 함께 '양대 호걸'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공청단을 관장하던 후치리(胡啓立) 당시 중앙서기처 서기에 의해 발탁돼 공청단 중앙에 들어간 그는 당시 상무서기이던 후 주석과 함께 근무하면서 후보위원, 후보서기, 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1993년 리 서기는 후 주석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공청단 최고위직인 중앙 제1서기에 올라 5년을 재직했다. 공청단 경력만 16년에 이르러 후 주석보다 내부 기반과 인맥이 튼튼하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공청단 중앙 재직기간에 베이징대 대학원에 진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1998년 44세의 나이로 허난(河南)성 성장 대리 겸 부서기로 임명돼 최연소 성장 및 첫 박사학위 보유 성장을 기록한 그는 정치지도자로서 경력에 주요한 전기를 맞았다.

낙후한 농업지대였던 허난성에서 동부 연해안의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여 경제를 크게 끌어올렸으며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04년 노후 공업지대인 동북지방 진흥의 임무를 받고
랴오닝성 서기로 옮기게 됐다.

동북 진흥 및 국유기업 개혁이라는 두 과제를 안고 랴오닝성으로 옮겨온 그는 그동안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올들어 랴오닝성의 경제성장률을 13년만에 최고치로 끌어올리며 비판을 잠재우고 있다.

특히 랴오닝성의 숙원과제였던 주택난을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해 주택 120만호 공급을 통해 일시에 해결, 랴오닝성 주민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리커창의 대학 동기인 왕쥔타오(王軍濤)는 "리커창은 관료적 분위기를 싫어하고 예리한 말솜씨와 머리를 갖고 있다"며 "생각이 다른 사람보다 반박자 빠르다"

 

보시라이(薄熙来) : 현 상무부 부장, 1949년생, 산시딩시앙,베이징대 졸업,

 

저우샤오촨(周小川) : 중국인민은행행장, 쟝수 의싱, 칭화대졸,

 

상푸린(尚福林) : 현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주석, 1951년생,산동 지난, 베이징대 졸, 2000년 중국농업은행장, 2002년 중국증권감독위원회주석,당위서기

  

로우지웨이(楼继伟) : 2007년 9월 29일 중국투자유한책임공사가 정식 비준을 받고 성립되면서, 국무원부비서장인 로우지웨이가 동사장(회장)으로 취임.1950년생, 저장 이우, 칭화대 졸

 

10월 15일부터 개최되는 제17대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중국의 미래가 이들 손에 달려 있으며, 동시에 동북아의 질서와 한국의 정치적 미래도 이들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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