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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가톨릭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9405
[성 김대건 신부 서품 170주년 특집] 상하이 한인공동체 활동상
“신자와 사제 간 친교 남다른 신앙 공동체”
상하이한인·포동한인성당 등 두 곳 설립
중국법에 의한 신앙생활 제약으로
정해진 장소·시간에만 미사 봉헌 가능
기도모임으로 시작된 공동체 전통 따라
현재까지 매주 반모임 활성화 ‘눈길’
중국법에 의한 신앙생활 제약으로
정해진 장소·시간에만 미사 봉헌 가능
기도모임으로 시작된 공동체 전통 따라
현재까지 매주 반모임 활성화 ‘눈길’
발행일 : 2015-08-23 [제2958호, 11면]
▲ 상하이한인성당 김동현 신부(뒷줄 가운데)와 수도자, 사목회 임원들.
중국 상하이에는 상하이한인성당(주임 김동현 신부)과 상하이포동한인성당(주임 예진광 신부)이 천주교 한인공동체로 활동하고 있다. 본당(parish) 보다는 공동체(community)에 가까운 형태다. 한인공동체 신자들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주재원과 개인 사업가가 주를 이룬다.
외국인 신분인 한국 신자들은 중국법에 의해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제약이 따른다. 상하이 포서지역 한인 신자들이 신앙생활하는 상하이한인성당은 상하이교구 베드로성당을 빌려 청소년 포함 평균 550~600명의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드리고 있다. 상하이 포동지역의 한국인 신자가 증가함에 따라 상하이한인성당에서 분가한 상하이포동한인성당은 2010년 8월 12일 중국 종교국으로부터 성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 성당인 진쟈샹성당에서 매주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도록 승인 받았다. 주일미사 참례인원은 180명 내외로 아직 상하이한인성당보다는 적은 편이다.
상하이 한인 신자 공동체의 역사는 1993년 3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맺어지면서 상하이에 거주하게 된 한인 신자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첫 기도회 모임을 가졌고 각 가정을 돌면서 월 1회 모임이 이어졌다. 지금도 상하이한인성당과 상하이포동한인성당 모두 매주 반모임이 활성화돼 있는 것은 초창기 공동체 형성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한국인 신자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한국교회에도 전해져 1995년 부활대축일에 이문희 대주교(전 대구대교구장)가 거록로(巨鹿路)성당에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집전하게 된다.
이듬해 9월에는 정석수 신부(대구대교구)가 상하이한인성당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했다. 2002년 김병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제3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드디어 월 1회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게 됐고 2009년 4월에는 월 4회로 한국어미사가 확대됐다. 매주 한국어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한인공동체 신자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했다.
상하이한인성당과 상하이포동한인성당에는 한국교회 성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제 단체들이 조직돼 있지만 특히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두드러진다. 상하이한인성당의 경우 2개 꾸리아에 27개 쁘레시디움이 매주 주회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최초의 쁘레시디움인 ‘천주의 모친’은 1996년 10월 16일 첫 주회를 가져 공동체 역사와 함께 가고 있다. 올 12월에는 1000차 주회를 맞이하게 된다.
상하이한인성당 류영철(가브리엘) 사목총회장은 상하이 한인공동체의 특징에 대해 “외국에 나와 있는 소수의 한국인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다 보니 서로 외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보통 3년 정도면 공동체 인원의 반이 바뀌는데 새로운 한인 신자들을 공동체가 뜨겁게 맞이한다”고 말했다. 상하이포동한인성당 김혜경(헬레나) 총구역장도 “인원이 소수다 보니 신자들 사이, 신자와 사제 사이가 친밀하고 가까워 축복 받은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상하이의 한인공동체에 성 김대건 신부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두 공동체는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일을 앞둔 주일에 진쟈샹성당에서, 김대건 신부 첫 미사일인 8월 24일에는 첫 미사 장소인 상하이 횡당(橫塘)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 등 이벤트도 해마다 열고 있다.
상하이포동한인성당 예진광 신부는 “포동성당 공동체는 김대건 신부님 덕분에 생겨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한국 신자들이 꾸준히 진쟈샹성당을 순례하고 진쟈샹성당 안에 성 김대건 신부 기념경당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포동성당 공동체도 생겨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해외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성실하게 신앙생활하는 한인 신자들의 모습에서 사제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나 자신의 신심을 키운다”고 말했다.
상하이한인성당 김동현 신부도 “2001년 진쟈샹성당이 철거, 이전 건립되고 김대건 신부님 성해도 함께 이전 안치되는 과정에서 상하이 한인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단결하고 김대건 신부님 공경의 정신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신분인 한국 신자들은 중국법에 의해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제약이 따른다. 상하이 포서지역 한인 신자들이 신앙생활하는 상하이한인성당은 상하이교구 베드로성당을 빌려 청소년 포함 평균 550~600명의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드리고 있다. 상하이 포동지역의 한국인 신자가 증가함에 따라 상하이한인성당에서 분가한 상하이포동한인성당은 2010년 8월 12일 중국 종교국으로부터 성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 성당인 진쟈샹성당에서 매주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도록 승인 받았다. 주일미사 참례인원은 180명 내외로 아직 상하이한인성당보다는 적은 편이다.
상하이 한인 신자 공동체의 역사는 1993년 3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맺어지면서 상하이에 거주하게 된 한인 신자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첫 기도회 모임을 가졌고 각 가정을 돌면서 월 1회 모임이 이어졌다. 지금도 상하이한인성당과 상하이포동한인성당 모두 매주 반모임이 활성화돼 있는 것은 초창기 공동체 형성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한국인 신자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한국교회에도 전해져 1995년 부활대축일에 이문희 대주교(전 대구대교구장)가 거록로(巨鹿路)성당에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집전하게 된다.
이듬해 9월에는 정석수 신부(대구대교구)가 상하이한인성당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했다. 2002년 김병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제3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드디어 월 1회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게 됐고 2009년 4월에는 월 4회로 한국어미사가 확대됐다. 매주 한국어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한인공동체 신자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했다.
상하이한인성당과 상하이포동한인성당에는 한국교회 성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제 단체들이 조직돼 있지만 특히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두드러진다. 상하이한인성당의 경우 2개 꾸리아에 27개 쁘레시디움이 매주 주회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최초의 쁘레시디움인 ‘천주의 모친’은 1996년 10월 16일 첫 주회를 가져 공동체 역사와 함께 가고 있다. 올 12월에는 1000차 주회를 맞이하게 된다.
상하이한인성당 류영철(가브리엘) 사목총회장은 상하이 한인공동체의 특징에 대해 “외국에 나와 있는 소수의 한국인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다 보니 서로 외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보통 3년 정도면 공동체 인원의 반이 바뀌는데 새로운 한인 신자들을 공동체가 뜨겁게 맞이한다”고 말했다. 상하이포동한인성당 김혜경(헬레나) 총구역장도 “인원이 소수다 보니 신자들 사이, 신자와 사제 사이가 친밀하고 가까워 축복 받은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상하이의 한인공동체에 성 김대건 신부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두 공동체는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일을 앞둔 주일에 진쟈샹성당에서, 김대건 신부 첫 미사일인 8월 24일에는 첫 미사 장소인 상하이 횡당(橫塘)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 등 이벤트도 해마다 열고 있다.
상하이포동한인성당 예진광 신부는 “포동성당 공동체는 김대건 신부님 덕분에 생겨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한국 신자들이 꾸준히 진쟈샹성당을 순례하고 진쟈샹성당 안에 성 김대건 신부 기념경당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포동성당 공동체도 생겨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해외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성실하게 신앙생활하는 한인 신자들의 모습에서 사제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나 자신의 신심을 키운다”고 말했다.
상하이한인성당 김동현 신부도 “2001년 진쟈샹성당이 철거, 이전 건립되고 김대건 신부님 성해도 함께 이전 안치되는 과정에서 상하이 한인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단결하고 김대건 신부님 공경의 정신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상하이포동한인성당 예진광 신부(앞줄 오른쪽 두 번째)와 사목회 임원, 신자들이 진쟈샹성당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출처 : 상해 포동한인성당
글쓴이 : 이진귀 닐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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