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을 풍요롭게/철학 종교일반

백인덕시인의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728x90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백인덕


쉴 새 없이 차량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학교 앞 포장마차, 식어 가는 떡볶이와 어묵을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처럼 번갈아 씹으며

자정을 향한 늦은 밤, 이십여 년 전의

그때처럼 난 혼자 되뇌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몇 몇 연구실의 불빛들은 아직 살아있지만

더 환하게 불 밝힌 건 대학병원 영안실,

가지에서 막 떨어지려는 꽃잎들이

내 흉한 어깨를 비스듬히 내려 보고 있다.

병원을 다녀야만 했을 시간을, 나는

풀리지 않는 숙취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

그러므로 잘못 다녔다는 것이다. 거기

휠덜린도 있었고, 라깡과 아아, 헤겔도 있었지만

정작 내 손으로 꾸민 작은 정원은 없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이미 다 식어버린 어묵 꼬치를 간장에 찍으며

내게 정원이 있었다면 어떤 나무와 풀,

가벼운 돌 몇 개가 어떻게 놓였을지

꿈을 꾼다. 자정이 다 된 늦은 밤,

백일몽처럼 길을 찾는다. 자꾸 발길을 느리게

하는 잔바람,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이 한마디로 이제는 시를 버려야겠다. 

 
  -(표4) 백인덕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오로지 시를 향한 집념만으로 스스로 제 뼈를 갉아가며 혁명을 꿈꿔 온 시인이 부르는 절망의 노래들로 가득하다. 영원이라는 백일몽의 길을 찾아 나선 시인의 영혼은 그토록 꿈꾸던 영원에 가 닿지 못하고 매 순간 스스로를 사선(死線)에 세운다. 좌초한 혁명의 끝에서 그는 “나와 내 것이라 믿었던 언어와 / 그 수레에 함부로 실었던 엉망인 노래”와 함께 시도 때도 없이 상처를 건드리는 허기로 자신을 밀고 가는 끝물의 생을 떠올린다. 지금껏 저를 구원해 줄 것으로 믿어 온 시와 현학은, ‘라깡’이 아니라 ‘새우깡’인 삶 속에서 오히려 그를 더 깊은 슬픔과 허기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절망 가득 찬 목소리로 그는 “난 세계가 뱉어버린 오물. / 난 이 세계를 사랑할 의무가 없다.”고 외친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시인의 영혼은 “기쁘게 덜렁이는 한 순간의 희망”을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다. ‘상처’와 ‘허기’로 가득한 생의 한가운데서 “왜 나는 죽지도 못하는가?”라며 한없이 절망하던 그는 이제 그대로 주저앉는 대신 바닥까지 닿은 슬픔과 절망이 빚어내는 힘으로 이 세상을 견뎌나가야 하리라. 누가 뭐래도 시인이란,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의 삶을 사랑하는’ 근성으로 똘똘 뭉친 존재가 아니겠는가? 박완호(시인)
 
백시인의 이 시를 보면서 사는게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허스키 보이스 그를 느끼지만 그는 온 몸으로 삶을 이야기 해 준다. 시도 시이지만 그를 보면 그가 더 시(詩)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0.01.15 산만정풍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