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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풍요롭게/닐로의 천주교 이야기

[스크랩] [남경]주교좌당 스구루 성모무염원죄시태당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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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난징을 방문한 포동한인성당 6명의 순례단은 첫 방문지인 난징조약의 담판 현장인 정해사기념관과 열강루를 보고 여러 정황을 파악해 보니 난징 주교좌당성당이 오후 늦게까지 참관이 가능하다고 하기에 18시경 스구루112호(石鼓路112号)를 찾아 갔습니다.



주교좌당 성당 안을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큰 버스까지 와 있는 걸 보니 지방에서 순례차 온 중국 교우들로 보였습니다. 성당 안은 불이 환히 켜져 있었습니다. 성당을 보는 내내 오늘도 역시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난징교구는 천주교가 중국에 전래 된 초창기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세번이나 다녀 간 곳이고 1599년에 이미 종교활동장소를 마련해 이용하다 1618년 난징교안때 훼손되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1864년 레이지디수에이(雷居迪随)선교사가 불교사찰인 절을 사들여 성당으로 지어 1870년 완공하게 되면서 이름을 성모무염원죄시태당(圣母无染原罪始胎堂)를 사용했습니다. 1926-28년 사이 발생한 중국의 북벌전쟁때 다시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1928년 전쟁후 국민당정부에서 배상 차원에서 돈을 대어 다시 지어 주었습니다.1930년대부터 주교좌당으로 되었고 1978년부터 강소성과 난징의 애국회 공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난징교구는 역사상 조선천주교와도 관계가 많습니다.


조선 초대 대목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에 들어 오려고 할 때 당시 난징 11대 주교였던 포르투갈 출신의 피레스 페레이라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방해하기도 했으며 유방제 피치파코(중국인) 신부도 난징 주교의 명령에 따라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에 방해를 했습니다.

12대 베시 주교는 김대건 신부가 상해에 도착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주교입니다. 13대는 마레스카 주교입니다. 조선인 2대 사제 최영업에게 1849년 4월 15일 서품을 준 주교입니다. 


현재 이 성당에서는 영어미사까지 있고 난징한인성당 공동체가 주일 11시 미사를 보는 성당으로 활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온 순례객들 중 우연히 인솔 신부를 만났습니다. 키가 작은 신부인데 니에빙리 요한 신부입니다.허베이 헝수에이징현교구에서 왔다고 합니다. 한국의 외방선교회 김 모 신부도 알고 있다고 하네요. 


 

  

이 성당은 주교좌당이라서 제단에 주교좌가 있습니다. 주교좌 뒤쪽에 마스코트가 있는데 특이하게 난징장강대교의 그림이 들어 가 있습니다.


 


성당 정면에는 일반적인 성당과 달리 성모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마도 최초 이 난징에 천주교가 들어 와 지은 성모무염원죄시태당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성당 옆에는 성물을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 



이 성당에서는 주일마다 한인공동체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난징 지역에는 상하이 보다는 적은 수의 교민들이 신앙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상하이교구가 생기면서 중국 천주교 강남 지역의 중심 축이 난징에서 상하이로 많이 넘어 온 걸 알 수 있습니다.  먼 역사속에 조선 교회와 많은 연결 고리가 있었던 난징교구의 주교좌성당을 돌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던 날이었습니다. 


2016.8.26 난징주교좌성당을 방문하고 

출처 : 상해 포동한인성당
글쓴이 : 이진귀 닐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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