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을 풍요롭게/닐로의 천주교 이야기

[스크랩] 우한 우창 화위앤산 성당

728x90

어제 아침에 한코우 상하이루 요셉 성당을 찾았었는데 저우 신부의 말과 자료를 확인해 보니 우창구(武昌区)에 성당이 있어 오전에 시간이 있어 이 성당을 가 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내가 머문 홍산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일단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택시를 타면 금방 갈 수 있지만 그보다는 버스로 찾아 찾아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민주루(民主路)를 지나 앤즈루(胭脂路,연지루)에서 좁은 길을 따라 가다 후베이성중의원(1860년 영국 전교사가 세운 병원)을 좀 지나 왼쪽으로 들어 가니 바로 눈앞에 천주당이라는 간판이 들어 온다. 좀 오래된 아파트 건물들이 있고 100여미터를 들어 가니 오른쪽으로 성당 입구가 나타났다. 성당 앞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려 있었다. 


오늘 토요일인데 무슨 날인가? 성당 문이 열려 있어 계단을 올라 성당으로 들어 가니 익히 보았던 결혼식(혼례성사)이 준비 되고 있었다. 오늘 누군가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는 모양이다. 옆의 성당 마당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결혼식준비에 바쁜 모양새다. 신랑과 신부도 보인다. 흑인도 같이 일행인듯 사진 찍기에 바쁘다. 


덕택에 결혼식을 전부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성가대 옷을 입은 분이 많은 부분을 리더 하고 있었다. 주례를 본 앤(焉이)신부는 젊어 보였다. 처음 본 우창의 낯선 성당에서 혼례성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절묘했다. 


1856년 스펠타 신부(Luigi Celestino Spelta O.F.M,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신부) 가 후베이대목구 주교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우창에 주교공서를 세우려 하였으나 정부 반대로 잉청에 세우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4개 구역으로 나눠지게 된다. 1861년 스펠타 주교를 이어 새로 자놀리(明位笃 밍웨이두,Eustachio Vito Modesto Zanoli, O.F.M)가 임명되고 스펠타 주교는 1862년 우창에서 선종하게 된다. 1862년은 프랑스가 천주교의 보교권을 얻개 되어 지하 전교에서 공개적으로 전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전기를 맞는다. 그리고 1880년 화위앤산일대 땅을 사서 장청더 신부가 설계하여 성당을 짓게 되었다. 1883년 자놀리 주교가 선종하고  장청더(江成德,Vincenzo Epiphane Carlassare O.F.M.)주교가 주교를 이어 받는다.   그리고 1889년 증축을 하여 1891년 현재의 모습을 갖춘 성당을 완공하게 되었다. 1892년 정식 개방하여 성당도 성가당  즉 요셉 마리아 예수의 성가정을 주보로 삼게 된다. 


1930년대에는 미국에서 온 신부가 고아원을 세웠고 1940년 새로 주교가 된 코왈스키(郭时济,Casimir Rembert Kowalski, O.F.M.)는 재임기간 1951년 고아원 사건이 발생하여 감금 추방된다. 문화혁명 기간에는 공장으로 사용되다가  1983년 다시 성당으로 회복되고 이때 신학원이 성당 옆에 만들어 지게 된다. 현재 40여명의 신학생이 있으며 5년 과정이다. (사진 참조. 天主教中南神哲学院)


현재 앤신부가 주임 신부로 있고 영어 미사를 보는 신부가 따로 있다. 주일에 3번의 중국어 미사와 1번의 영어 미사가 있다.  우창에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은 아까 혼례때 흑인이 사진을 찍고 있는 일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성당을 떠나 호텔로 들어 와 짐을 챙겨서 공항으로 가야 한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과일 가게에서 귤을 사서 손에 들었다. 







후베이와 관련되어 두분의 성인이 있다. 

성 리우 프란치스코 신부(刘方济各, St. Fr. Clet,1820년 교수형)와 성 동원스에(圣董文学神父, St. Ioannes Gabriel Perboyre (1840 교수형)로 모두 도미니코회 출신이다. 


2016.11.19 우창 화위앤산 성가 성당을 답사하고 

출처 : 상해 포동한인성당
글쓴이 : 이진귀 닐로 원글보기
메모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