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시작한 경비원 일을 8월 31일 아침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후 잠시 수면을 취했다. 새벽에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잠을 보충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시경 일어나서 세수하고 목포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10시 30분에 이웃에 사는 처남 부부와 같이 집을 나섰다. 처남 차량으로 목포까지 가게 된다. 사전에 준비한 등산복, 등산화, 산행 지팡이(스틱), 신분증, 현금, 비를 예상하여 비옷과 우산 그리고 간식거리를 조금 준비하여 출발한 것이다. 어제까지 내린 비는 이미 그치고 날씨는 구름이 낀 정도였다.
평택, 천안, 공주를 거쳐 군산 못 미쳐서 서해고속도로를 통해 목포까지 가게 되는 소요시간은 예정대로 3시간 30분여 소요되었다. 네비게이션이 연안여객선터미널로 되어 있어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갔다. 표 파는 2층 매표소로 가서 목포에서 홍도 가는 배표를 문의하니 오늘은 안 팔고 내일 아침 7시경 와서 사면 된다고 하였다. 아무때나 표를 파는 게 아니고 배 시간에 맞춰 사전 1-2시간 전부터 판다는 것도 알았다. 인터넷에서 보니 현장 판매 표가 월등히 많았던 것이 생각났다.
점심은 간단하게 백반식으로
그래서 일행은 내일 아침 7시경 오기로 하고 미리 예약해 둔 마리나베이 호텔로 갔다. 사전에 확인된 것이지만 주차장이 협소하여 길 건너편 공영주차장에 주차하였다. 공영주차장이 넓고 빈 자리도 많이 있었다. 호텔 등록을 끝내고 열쇠를 받아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점심을 먹기 위해 검색해서 찾은 곳이 백반집이다. 호텔에서 가까운 “원조백반전문점 돌집”으로 인당 만원으로 생선도 나오고 푸짐한 반찬에 점심으로는 무척 잘 먹은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이제부터 저녁까지는 목포 유람의 시간이다.
목포 유람이 시작되다
목포를 찾는 이유는 무었일까? 새삼 질문을 던져 본다. 신안의 흑산도 등 섬들을 가는 통로, 다도해에서 잡아 온 해산물이 풍부한 먹거리, 일제강점기 시대 근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볼거리로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남종화의 거장인 남농 허건 선생의 향기가 남아 있는 남농기념관, 목포 문학을 일군 극작가 김우진,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평론가 김현의 삶과 문학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목포문학관, 미국에서 일본을 통해 들여와 최초로 발양시킨 고하도 육지면 발양지와 체험관이 추가로 내가 꼽은 목포를 찾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곳을 다 갈 수가 없다. 특히 목포문학박람회가 작년에 열렸는데 내년에 열릴 예정이다. 이를 연계하여 내년 가을에 목포를 방문한다면 유익할 것 같다. 이번은 크게 근대 일제강점기의 역사 흔적 일부, 해상케이블카 타기, 유달산 보기, 먹거리 중 민어회 먹기 정도를 목표로 했다.
목포시에 대해 간단하게 목포에 대해 알아 본다.
우선 목포(木浦)라는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여러가지 설만 존재한다. 목포(木浦)라고 쓴 것으로 보아서 나무와 관련이 있고 포는 강가의 배가 드나드는 곳이나 바닷가 배가 드나드는 곳을 말한다. 이름 유래가 명확하지 않으니 더 알아보는 것도 의미는 없다. 북쪽은 무안군, 남동쪽은 영암군, 서쪽은 신안군과 접해 있다. 유달산이 서쪽에 있고, 남쪽으로 영산강 하구가 있다. 인구는 22만명 정도. 면적은 52만 평방킬로미터, 주택보급율은 100%에 달한다.
코롬방1949 빵집
점심을 먹은 후 일행은 목포의 근대 문화가 살아 있는 구 시가지를 갔다. 유달산이 눈 앞에 우뚝 서 있다. 한쪽에서는 항구에서 불어 오는 짠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빵집이다. 먼저 씨엘비베이커리에 들러 빵과 커피를 마시고 코롬방제과점에서도 빵을 샀다. 빵을 두고 두 집이 코롬1949이라는 빵집 상호를 두고 경쟁하면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목포 구시가지 중심권에서 빵으로 소문이 난 집이라고 한다.
오거리 문화센터(구 동본원사 목포별관)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빵과 커피를 먹고 마신 후 길거리에서 만난 곳은 옥단이길의 오거리문화센터로 구 동본원사 목포별관이었던 곳이다. 옥단이는 극작가 차범석이 쓴 <옥단어>에 등장하는 여인. <옥단어>는 일제 말에서 해방 정국에 이르는 시기 전남 목포에 실존했던 인물 옥단과 당시 목포에 거주했던 경상도 출신 이참봉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일제시대와 해방에 이르는 우리의 급박한 근대사와 함께 고난한 삶을 살아야했던 기층 민중의 삶에 대한 씻김놀이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옥단이를 2018년 마카오 까모에스 공원에서 만난적이 있다. https://blog.naver.com/jackleecom/221421911101
동본원사에 대해서는 자료를 참고하여 본다.
일제의 조선침탈에서 선봉에 섰던 불교종파로 동본원사와 서본원사가 있다. 당초 두 사원은 ‘본원사’라는 하나의 절이었는데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사원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둘로 나눈 것이다. 동본원사는 부산에 임시포교소인 별원을 설치한 이래 각 개항장에 별원을 설치했는데, 인천에는 1884년, 목포에는 1898년에 세웠다. 동본원사는 포교 외에 개항장에서 생활하던 일본인 자녀를 교육하는 소학교와 복지시설도 운영했다.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목포지역 최초의 일본불교사원으로 현존하는 석조 건물은 193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후 불교계에서 매물로 내 놓았는데 1957년 목포중앙교회에서 이 건물을 인수하여 교회로 사용함에 따라 일본불교사원의 당파풍 지붕에 십자가가 걸리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청에서 매입해 현재 리모델링을 거쳐 목포시가 운영하는 ‘오거리문화센터’로 쓰이고 있다. 내부 시설은 옛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외부 건물 형태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구 목포일본영사관)
다시 옮겨간 곳은 “국도 1,2호선기점기념비”가 있는 유달동 교차로를 돌아 "평화의 소녀상"을 잠시 보고 간 목포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대사관)이다. 주소지는 ‘영산로 29번길 6’이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8년 10월 목포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은 것이다. 일본은 영사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조선정부로부터 만호청(1895년 폐진된 목포진)을 빌려 사용하였고, 유달산 고지대에 가건물을 지어 이관하였으며, 다시 현재의 위치인 대의동에 목포일본영사관과 부대시설인 경찰서·우편국 등을 함께 마련하였다. 당초 일본영사는 무안감리에게 목포일본영사관 부지 16,028평방미터를 요청하였으나, 이신청을 접수한 조선정부는 9,483평방미터만을 승인하였다. 공사비 7만여 원을 들여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완공한 것으로 일본인들의 기록이 전해온다. 광복이후 1947년부터 목포시청, 1974년부터 (구)목포일본영사관, 1990년 1월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다 최근 목포문화원이 이전함에 따라 보수 후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하였다. 이곳에는 근대 목포의 역사에 대해 사진과 설명 그리고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목포문화관광)
육지면의 면화 수탈에 대한 설명이 있다.
목포항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육지면의 생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즉 생산된 면화는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 가게 되었다.
구 목포부청 서고와 방공호
서고(書庫)는 목포 일본영사관이 일제 강점기에 목포부청(木浦府廳)으로 사용될 때 문서고로 건립된 건물이다. 평면 형태는 전면 폭이 좁고 깊이가 깊은 직사각형이고, 정면 중앙의 박공면은 페디먼트(Pediment, 삼각형 모양의 구조)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지붕 처마 하부는 코니스(Cornice, 돌림띠 모양의 구조) 형상으로 정연하게 다듬은 석재를 수직으로 돌출시켜 마무리하는 등 관공서의 서고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방공호(防空壕)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반도에도 전쟁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요지마다 방공호를 만들어 대비하였는데, 이곳도 일제 강점기 말기 전쟁시설물의 유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가치가 있다.
한동안 근대역사관과 방공호를 보고 나오면서 해설사를 만나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잘 구경하는 방법과 주변의 역사 건물들에 대해 추가로 전해 들었다. 덤으로 얻은 여행 정보들이다.
유달산
시가지의 서남쪽에 병풍을 둘러놓은 듯 기암절벽이 펼쳐진 유달산은 고려시대인 1351년(충정왕 3)에 봉수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가 쌓여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는 일명 노적봉 (露積峰)이 있으며, 영산강· 삼학도 (三鶴島)와 함께 이곳 사람들의 시정(詩情)을 돋우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다. 유달산이 노령산맥의 마지막 줄기로 솟아 난 곳이라고 한다. 229미터 높이로 그렇게 높지는 않으나 산 정상은 기암괴석으로 솟아 있다. 일등바위, 이등바위, 삼등바위가 있다. 고나음사,보광사,불갑사의 절이 있고, 조각공원과 달성공원이 있다. 이 유달산을 해상케이블카가 지나 가게 된다. 목포근대역사관1관에서 유달로를 가면 오른쪽으로 목포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기독교 개신교계 목포혜인여자중고등학교와 목포덕인중고등학교가 산밑에 자리 잡고 있어 인상적이다.
해상케이블카
목포에 가면 꼭 타보라는 것이 해상케이블카다. 북항에서 출발해 유달산을 거쳐 고하도에 이르는 편도 3.23킬로미터의 하늘 길이다. 타워 높이도 높아 제일 높은 주타워가 155미터나 된다고 한다. 이 타워는 프랑스 포마의 최신 설계와 시공사 새천년종합건설의 첨단 공법으로 건설된 것으로, 케이블카 주탑중 세계 세번째 높이의 케이블카 타워로 알려져 있다.
케이블카롤 타고 목포시내와 유달산 일대를 보고 바다에서 뜨고 지는 일출과 일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고하도에서 내려 카페가 있는 곳까지 산책을 하고 데크까지 내려 갔다 다시 올라와 돌아 오는 걷는 길이 괜찮다.
시간안배가 중요한데 19시경 해가 질 예정이니 두시간전정도인 17시에 케이블카를 탔다. 유달산과 고하도도 중요하지만 석양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하도에서 돌아오는 중간 기착점인 유달산 중간 탑승강에서 내려 관운각 위쪽에서 맞는 저녁노을은 유달산의 바위가 가로막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달산 탑승장 옥상에서 일부 석양을 보고 나머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보기로 하였다. 해상케이블카에서 맞는 저녁 노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목포의 불타는 빛의 향연, 석양에 푹 빠진 하루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케이블카를 타고 본 석양
목포의 해상케이블카 구간에서 본 석양은 환상적이다. 목포대교와 바다 너머에서 만들어지는 빛의 쇼는 언제나 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늘 보여 준 석양은 구름의 조연이 빛났다. 더군다나 상현달이 나타나 더욱 황홀한 무대였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
구 호남은행목포지점(舊 湖南銀行 木浦支店), 등록문화재 제29호 등록일 2002.05.31.
호남은행은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해 현준호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20년에 설립한 은행이다. 일제의 식민지 금융 정책에 맞서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다가 1942년에 동일은행과 강제로 통합되었고 이후 조흥은행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목포 상권의 중심인 오거리에 세운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11월 11일에 신축한 것이다. 2층으로 된 사각형 모양의 벽돌 건물로 표면에 붉은색 타일을 붙여 멋스러움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1897년 개항 이후 상업 도시로 성장한 목포에는 근대 금융 건축물이 많이 생겼는데, 현재는 이 건물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한국인이 설립하고 운영한 민족 은행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근대 문화유산이다.
민어회거리
목포를 가면 민어회를 먹으라고 했다. 민어는 주로 생물이나 말린 생선으로만 대해 왔는데 회로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목포에는 이 민어회를 전문으로 하는 민어회 거리가 있다. 번화로에 몇 집의 민어회를 파는 집들이 모여 있다. 중앙횟집, 만호유달횟집, 영란횟집, 포도원횟집 등이다. 어느 곳이 좋은 지는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될 듯하다. 우리는 만호유달횟집에 들어 민어회를 시켜 먹었다.
마리나베이호텔
항구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주변을 둘러 보는 데 매우 편리한 가족형 호텔이다. 저렴하지만 편의 시설은 거의 없다. 주차장은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목포 여객터미널
홍도를 가지 위해 이곳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2층 매표소로 올라가 배표를 샀다. 줄을 선 사람들은 있었으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제 목포를 떠나 홍도로 간다.
평일이라 시가지에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볼거리를 보았다. 관광의 도시 목포의 본 모습은 아니리라는 생각이다. 잠시 보고가는 목포에 아쉬움은 남는다. 다음에 다시 와서 이번에 못본 곳들을 돌아 볼 생각도 하게 된다. 그때는 목포까지 KTX를 타고 오면 편안하게 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특별히 작년에 열렸던 목포문학박람회가 2년마다 열릴 예정이니 내년 10월에 열릴 예정이다.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과 김진섭, 최일수, 최하림, 천승세, 황현산, 김지하라는 문학인의 향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09.06. 목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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