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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국여행

[홍도]홍도 마을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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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여행, 홍도 마을 돌아보기(홍도3부)  >

9 3일 토요일

홍도는 바람을 기다리는 대풍도(待風島) 라고 불리기도 했다. 즉 북서풍을 피해 정박해 있다가 동남풍이 불면 다시 출항하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오늘 나는 홍도를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1구 마을을 둘러 보기로 했다. 배를 기다리면서 홍도를 둘러 보는 것이다. 바람을 기다리면서 이전 사람들이 마을을 둘러 보았을 그 심정으로.

홍도 마을 지명은 1구는 죽촌, 죽항, 대촌, 죽전으로 불리웠고, 2구는 대밭밑, 석촌, 석기미등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2구는 이번 여행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구경한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홍도에 관한 짦은 상식 몇가지

홍도는 다도해국립공원인 동시에 천연기념물(170)이다. 그래서 홍도의 어떤 식물, 광물 자연 산물도 육지로 가져 가면 안된다. 해안의 몽돌 하나도 들고 나가면 안된다. 문제는 살고 있는 주택도 제한을 받는다. 1구는 18미터, 2구는 높이 12미터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홍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에 대한 내용은 문화유산홈페이지를 검색하면 된다. 

홍도 인구는 228월 기준 257세대 452명이다홍도에는 1678년 조선 숙종 4년에 고씨라는 사람이 섬(2)에 들어 와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그래서 지금도 1구에는 고씨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홍도에는 논이 없고 밭이 있어도 조그만 텃밭 정도의 밭뙈기가 있을 뿐이다. 그 밭들도 누군가의 공덕으로 나무를 베어 내 만들어졌다고 한다1구에는 개가 없으나 2구에는 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도와 이탈리아 카프리섬 비교

홍도를 말할때 이탈리아 카프리섬(capri)과 비교하기도 한다. 비교해 보자. 

이탈리아 카프리섬 : 나폴리시 소속, 10.4평방킬로미터, 인구 13,000명 정도(2022).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에서 20, 나폴리에서 40분 거리로 가깝다. 용암으로 덮인 섬, 최고 589미터(Monte Solaro) 높이, 차량과 산악 열차가 있다. 볼거리가 많은 성당도 몇 개 있다. 푸른 동굴이 유명하다. 많은 유명인들과 인연이 깊은 역사가 깊은 섬이다.

한국 홍도 : 6.5평방킬로미터, 목포에서 2시간 30분 거리, 흑산면 홍도리, 제일 높은 곳이 기대봉(깃대봉)으로 해발 367.8미터다.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아치형 동굴이 다수 있다. 다만 거리가 내륙과 멀어 섬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매혹의 섬이다.

 

홍도 1구 마을 돌아보기

어제 유람선 관광과 기대봉(깃대봉) 등산을 마쳤고, 오늘 1030분 출발 흑산도행 여객선을 탈 예정이다

 

몽돌해변

식전 호텔 주변의 몽돌해변을 구경했다. 해는 이미 많이 떴다. 몽돌해변은 홍도의 서북쪽방향으로 위치해 있어 해는 반대편에 떠 있다. 해변에 내려오니 비교적 잔잔한 파도와 돌이 부딪히며 내는 파도소리가 좌그르르 하면서 나는 소리처럼 들려 온다. 이 몽돌들은 홍도의 암석인 규암이 닳고 닳아 만들어진 돌들일 것이다.

해변 주위에는 해산물 식당인 회집(횟집)이 몇 군데가 보인다. 대한, 유성, 광성, 홍도회집들이다.

몽돌해변

 

몽돌해변에서 올라오면서 만난 비슷하게 앃인 암석층. 이 형태가 많은 것이 홍도의 특징이다. 지형이 배사구조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전복죽

어제 주문해 둔 아침이다. 맛있는 전복죽을 먹으니 기운이 돋아나는 듯 하다.

 

 

짐을 챙겨 놓고 남문팰리스호텔을 나와 바로 옆의 서해모텔, 홍도수산, 킴스모텔,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 해인산장횟집, 대한여관, 대한예수교장로회 홍도납부교회를 따라 걸었다. 교회 앞 조그만 텃밭의 화분에서 부추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

 

우체국 앞 전망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을과 부두 그리고 방파제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홍도우체국에 들렀다. 홍도우체국에서 갑자기 엽서를 보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엽서를 두 장 주문했다. 두 딸에게 보내기 위해서다.

 

홍도우체국
두장의 엽서. 홍도를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다시 마을을 돌아 본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탐방지원센터, 홍도치안센터, 전무안군수김공영춘공적기념비, 흑산성당홍도1공소 등의 건물들이 있다.

 

홍도탐방지원센터에서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여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탐방지원센터는 고유 업무가 따로 있을 것이다. 철새연구센터가 같이 있다.

 

 

홍도관리소에는 홍도생태전시관, 홍도난전시실, 동백군락지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 무안군수 김영춘 공적 기념비는 우체국 앞 길가에 세워진 기념비로 방파제를 건설하는데 공적이 있고 또한 농토가 적은 홍도에 벌목을 허가해 생계를 도와 주었던 일 등으로 주민들이 이를 고맙게 여겨 1952년에 세운 기념비다.

 

천주교 (흑산성당) 홍도 공소 

붉은 지붕의 집

밭뙈기 

 

그 외 알아 둘 곳 

 

죽항제당(당산)

300여년이나 되었다는 동백군락지가 있는 죽항제당(당산)이 있는데 2007년 재건되어 복원되어 있다. 150년 전부터 조성되어 정월 초사흘에 마을제사를 지내왔던 곳이다. 제당이 있지만 사실은 나무숲과 돌바위에 제사(산신제)를 지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선창에서 풍어제를 지내고(둑제) 거북바위(몽돌해변 동쪽끝에 위치)로 가서 용왕허수아비를 띄워 액을 물리치는 의식으로 제가 마무리 된다고 한다.

홍도등대
등대문화유산 3호인 홍도등대는 목포항과 서해안의 남북항로를 오가는 선박들이 주로 이용하는 연안등대이다. 1931 2월에 일본이 대륙침략에 참여하는 자국 함대의 안전을 위하여 ‘조선총독부 체신국 홍도등대’로 처음 신설하였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에 이토 히루부미가 대륙 친출 통로인 서해에 등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16쪽)

이곳에 1931년 홍도등대가 신설된 당시 건립된 건물인 사각형 콘크리트 등탑 1(13m)이 잘 남아있는데, 전체높이 14.3m, 건물기초 36.2, 1층 넓이 32.73, 2층 넓이 32.08㎡로 오각형 모양을 한 건물이다. 이 등탑은 등대를 밝히기 위한 공간과 사무공간이 함께 배치된 복합건축물로 외관의 조형미가 뛰어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현재 1층 사무공간은 사무실 신축으로 비어있으나 등탑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한편 등탑 건물 옆에는 직사각형 비석형태의 ‘初點燈記念碑’(높이 61cm, 64cm, 두께 12.5cm, 1931년 건립) 1기와 ‘霧鐘’(길이 75cm, 종의 둘레 120) 1기가 남아있다. 기념비는 전면 상단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初點燈記念碑’라는 글씨와 하단에 한문과 일본어가 섞인 찬양시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昭和六年二月一日’이라는 연대(1931)와 건립에 참여한 ‘角田建三’과 ‘久保田茂富’의 일본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霧鐘은 안개가 심할 때 종을 쳐 등대의 위치를 알렸던 도구이나 지금은 에어싸이렌이 그 기능을 대신하면서 기능이 상실된 채 걸려 있다. 무종의 외면에는 ‘항로표시공장근제’라는 글씨가 선명하고 범종처럼 유두가 상하로 4~5개씩 배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홍도등대는 1996 8월부터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홍도항로표지관리소’에 속한 등대로 20초에 3번 반짝이는 등대불빛(광달거리 44)과 안개가 심해 시계가 불량할 때는 에어싸이렌(음달거리 5.5)을 울려 선박에게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지금은 해양수산부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홍도항로표지관리소에서 관할하고 있다. 내부에서 2층 등탑으로 올라가는 주물 사다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등찹 높이는 10미터, 등고는 해수면에서 89미터.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주관하는 스탬프 투어 15등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3명이 3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있다.(2구에 위치)

 

숯가마터

홍도는 일제강점기 하에 숯을 구워 공출했던 섬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의 기억에 따르면, 홍도의 깃대봉(352.2m) 아래 설풍리(雪風里) 쪽으로 4~5기의 숯굴이 있었고, 내연발전소 위쪽에 있는 ‘웇골’에 견산(見山)의 숯굴이 10여기 있었다고 한다. 현재 가장 잘 남아있는 숯가마가 깃대봉 해발 320m 부근, 죽항에서 석촌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남아있다. 주민들은 이 숯가마를 ‘정숙숯굴’이라고 말한다. 일제하 1925~1935년 사이에 정숙이라는 사람이 숯을 구워 공출했던 유명한 원형 가마이다.

 

‘정숙숯굴’은 2구 석촌 주민들이 노역을 했던 가마이고, 견산의 숯굴은 1구 죽항 주민들이 노역을 했던 가마로 알려진다. 이들 숯굴이 있는 곳은 도토리나무 등 낙엽활엽수에 속하는 참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숯을 굽기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정숙숯굴’은 직경 300~330cm 크기로 높이 80cm 정도의 가마벽을 자연석과 흙을 섞어 원형으로 쌓아올렸다. 전면에는 아궁이가 뚫려 있고 반대쪽에 굴뚝 역할을 했음직한 구멍이 보인다. 원형의 숯가마는 다시 주위의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시설로 왼편에 돌담을 쌓고, 오른편에 흙두둑을 조성하여 가마 내 불길이 밖으로 새어나가 산불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숯은 가마 내에 참나무를 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태우다가 장작이 어느 정도 타면, 가마 상단부를 흙을 덮어 불길을 잡는다. 흙을 덮고 3~4일 기다리면 장작에 열이 식고 보통 일주일이 지나면 숯을 가마에서 꺼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홍도에서는 1940년까지 숯을 구어 공출해갔으나 그 뒤 폐쇄되었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한 홍도 여행은 10시30분이 되어 여객선을 타면서 끝이 났다. 홍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유람선은 벌써 장도를 지나 흑산도에 접어 든다. 저 멀리 홍도가 외롭게 서 있다. 내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홍도셤이여, 잘 있어라. 

2022.09.02일 홍도 여행을 끝내고, 이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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