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칸의 하늘은 탈레반의 한국인 피랍 알고 있었다 5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는 우발인가 치밀한 계획인가
이제까지 보아온 아프칸의 탈레반 한국인 납치는 여러 곳에서 예상되었던 일로 보인다. 아프칸의 하늘은 너무도 선명히 이 다가올 미래의 일들을 예언하고 있다.
선교
이러한 위험한 곳을 결국은 아무런 안전 장치도 준비하지 않은채 버스 운전기사에게 몸을 맡긴 것이다.
지난 2월 외교부가 `탈레반이 한국인을 납치할 계획'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주 아프간 대사관 및 주 파키스탄 대사관을 통해 현지 NGO 관계자와 선교사들의 육로 이동을 별도 통보시까지 금지해 줄 것을 요청할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테러 위협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여름 기독교 계열 비정부단체인 아시아협력기구(IACD)가 카불에서 한국인 수천명이 참여하는 `아프간 평화축제'를 기획하면서 현지에서는 상당한 반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지혜로운 선교정책, http://blog.daum.net/snchoisn 참고하시면 잘 알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인에 대한 납치는 사전에 계획된 어느 정도 예상된 우발적 사건으로 보인다. 어디를 다니든지 그들의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곳곳에 탈레반의 끄나풀이 있고, 지역에 따라 언제든지 출몰하는 무장 전사들이 있는 지역인데…. 칸다하르는 2월 정부에서도 위험지역이라고 그렇게 경고했었는데. 더우기 탈레반의 끄나풀들이-무장강도등- 여기서 결국 버스운전기사가 문제였네요--일단은 납치하고 그들을 탈레반에 넘겼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은가? 현재 아프칸에서 손쉽게 돈을 벌수 있는 방법중에서 가능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보인다.
탈레반과의 협상, 그리고 복잡한 관계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탈레반이 납치한 거라면(무장강도로부터 건네받았든) 선례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들의 요구는 아프칸에 수감된 동료의 석방과 자국군의 철수 그리고 돈일 것이다. 동의다산부대의 철수와 관련 되어서는 정부에서 이미 카드를 사용해 버렸다. 올 년말까지 철수 계획이 잡혀 있고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그리고 돈은 사실 받더라도 비밀로 부치기 때문에 실제 얼마를 받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탈레반 포로의 석방이다. 이는 우리정부가 결정을 내릴 사항이 아니다. 아프칸의 협조가 있어야 되고 더욱이 미국의 최종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탈리아 인질의 석방조건에 따라 탈레반 포로 5명을 풀어 준 이후 카르자이는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다시는 그런 결정을 내리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만큼 아프칸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탈레반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한국인 피랍자중 배형규목사를 살해 했고, 연이어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이제는 21명의 한국인 인질이 탈레반측에 의해 납치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정부대로 이들의 석방을 위해 뛰고 있다.
이 순간에 탈레반을 다시 잘 들여다 보아야 조그만 실마리라도 보일 것이다. 단순 감상적인 기대는 금물이다. 한국의 인질은 전략적으로 볼때 아프칸이나 다국적군 그리고 탈레반 양쪽으로 유용한 측면이 있어 서로의 입장에서 인질을 바라보고 있는 측면이 있다. 즉 아프칸과 다국적군의 입장에서는 최근의 민간인 살해에 대한 부담이 있고, 아프칸 정부 역시도 지난번 이탈리아 인질 석방때 포로 교환으로 인해 지지도가 약해져 있다. 그래서 인질을 핑계로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 탈레반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명분이 충분히 서기 때문이다.
반대로 탈레반은 더욱 유리한 입장이다. 지금까지 이탈리아등 외국인 납치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하는 지도부들이라, 21명에 대해 쉽게 석방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석방 하더라도 무슬림의 율법을 거스리지 않는다는 무마용으로 여자 인질을 조금씩 그것도 거동이 불편한 관리가 힘든 사람부터 석방 대상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그들의 요구는 기본적으로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8월 12일 2명의 여성 인질을 석방했다고 말했다가 아니라고 말한 아마디의 표현대로라면 내부적으로도 인질 석방에 대해 지도부와 지방간의 손발이 안 맞거나, 최종 요구가 서로 충족되지 않아 거절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곧 석방될 가능성이 커 보이나 무조건적인 석방이라고 말한 그들의 말 뒤에는 더 어려운 이후의 협상에 대한 시련이 남아 있어 보인다.
정부에서도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 를 통하는 등 다각적인 루트를 통해 인질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힘겨운 협상으로 보인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다국적군이나 아프칸이 언제까지 무력 사용을 자제할 것인가가 중요한 요소이며 기로이고, 탈레반은 소기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한국의 인질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의 생각대로 일괄 석방이면 정말 좋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그런 희망이 많지 않아 보인다.
아프칸에서 발생한 탈레반의 외국인 피랍 일지
다시 정리해 보자. 사실 개중에는 탈레반이 아닌 무장 강도에 의한 납치도 있다. 사실 그들의 내막을 잘 모르는 우리들로서는 쉽게 무장 단체 탈레반과 고나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2006.3.11 = 탈레반 반군,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서 독일회사 직원인 알바니아인 4명, 아프간인 4명, 차량 이동중 납치.
▲2006.4.28 = 탈레반, 아프간 이동통신회사 인도인을 기술자ㆍ운전사와 함께 남부 자불주에서 납치. -> 인도인 살해
▲2006.6.22 = 동부 누리스탄주에서 스웨덴의 아프간 구호위원회 소속 의사 2명과 구호담당자 1명, 누리스탄주 정부 관리 2명 등 5명 차량 이동중 피랍.
▲2006.11.21 = 탈레반, 남부 헬만드주서 파키스탄 더 스타지의 시예드 살림 샤흐자드 기자 등 언론인 2명 납치.
▲2007.3.7 =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 아프간 주재 특파원 다니엘 마스트로쟈코모 기자가 통역, 운전사와 함께 남부 헬만드주에서 탈레반에 피랍, 20여일만에 석방. 이탈리아 기자 석방, 운전사는 참수당함.
▲2007.4.3 = 프랑스인 구호단체 요원 2명, 아프간인 13명과 함께 탈레반에 납치됐다 1~2개월 사이로 여자 먼저, 남자순으로 풀려남.
▲2007.6.28 = 아프간 남서부 님로즈에서 독일인 남성 괴한에 의해 피랍.
▲2007.7.18 = 독일인 건설기술자 2명 괴한에 의해 피랍. 1명 살해. 1명 진행중
▲2007.7.19 = 한국인 23명, 아프간 카불에서 버스로 칸다하르로 이동 중 현지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 2명 사살. 현재 진행중
▲2007.7.24 = 독일인 기자 1명과 통역관 1명 괴한에 의해 피랍. 진행중
탈레반 그들은누구인가
이렇게 아프칸에서 외국인을 납치하고 있는 탈레반은 누구인가?
페르시아어로 '학생들'이란 뜻. Taliban or Taleban이라고도 씀. 1996~2001년 5년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 집권 세력.
정치·종교적으로 극단적 보수주의 분파로 소련군 철수, 공산정권 붕괴, 내전 돌입으로 아프가니스탄이 혼란스러웠던 1990년대 중반에 출현했다. 탈리반이란 이름은 구성원이 대부분 마드라샤에 다니던 학생들인 데서 따왔다. 마드라샤는 1980년대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이다. 탈리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지방에서 질서를 잡는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재빨리 남부 지방을 지배하던 군벌을 몰아냈다.
1996년말 해외에 있는 보수적인 이슬람 분파의 지원과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의 지지에 힘입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북부의 타지크족, 서부의 우즈베크족, 중부의 하자라족 등 비파슈툰족들은 탈리반에 계속 저항했다. 이들은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탈리반의 집권이 전통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파슈툰족의 집권 연장이라고 여겼다.
즉, 탈리반의 모태는 미국이 지원한 게릴라 집단 파슈툰족 무자헤딘인 것이다( Pashtun Mujahideen groups opposing the Soviet invasion of Afghanistan).
1999년 8월 현재 탈레반은 카불을 포함하여 아프가니스탄의 90%를 점령하고 있으며 북쪽지방에 주둔한 소수파 중심의 반군연합 세력과 교전하면서 아프간에서는 내전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탈레반은 소비에트 연방에 맞서 싸웠던 무자헤딘 세력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영토 3분의 2을 장악하면서 아프간의 새로운 통치세력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탈레반의 이같은 급격한 군사적 성공으로 봐서 파키스탄의 군사 정보국에 의해 이들이 창설된 것으로 보고 있다.
35세 된 탈레반의 창설자이자 최고 지도자인 모하메드 오마르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무자헤딘의 전사로도 싸웠던 경력이 있는 성직자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의 정치적 목표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신정 국가를 창설하는것이다. 모하메드 오마르는 최근 서기 5세기경의 고대 불상을 포함한 모든 불상들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하는 포고문을 발표,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파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탈리반의 기관매체인 바흐타르 통신에 발표된 이 포고문에서, "신은 유일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인물의) 형상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이들 불상은 지금부터 신앙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마르가 파괴를 지시한 세계 최대 마애석불이 있는 바미얀 지역에서는 아직도 주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고 나라는 전 세계에서 파키스탄을 포함에 3개국에 불과하며 이들은 이같은 세계의 고립화 움직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세계적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극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무이누딘 하이더 파키스탄 내무장관은 불상 파괴작업에 대해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느끼는 고립에 대한 저항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으며, 파키스탄 회교연맹당 당수도 "불상파괴 조치는 서방국가의 대(對)아프카니스탄 조치에 대한 대응"이라고 덧붙여 이를 반증하고 있다.
2001년 무렵 탈리반은 일부 북부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장악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탈리반의 각종 사회정책, 여성의 사회활동 억제, 바미안 석불과 같은 비이슬람 종교 유적 파괴,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을 비판했으며 탈리반 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탈리반은 수차례에 걸쳐 미국인에 대해 테러를 가한 혐의로 기소된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이슬람 전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었다.
그러나 다시 탈레반이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프칸의 경제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귀비에서 벌어 들이는 비용은 아프칸 국민들의 월급에 적절히 반영되어 먹고 살기 위해 탈레반으로 가입하고 있는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 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욱이 그들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 날때 주는 돈은 고스란히 이러한 비용에 충당하고 있지 않을까.,
아프칸은 어떤 나라인가
아프가니스탄은 1989년 소련의 철수이후 20년 이상의 내전으로 인해 국가 기반시설은 물론 경제 인프라, 수출 상품의 해외 판로 등이 거의 파괴됐으며 잦은 외국인 납치로 치안불안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국가다.
우리나라는 2002년 2월 아프간 파병을 시작했으며 현재 동의.다산부대 등 200여명의 한국군이 동맹군과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각각 공병 및 의료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1973년 12월 수교, 공산정권 수립으로 1978년 9월 단교. 탈레반 정권 붕괴 후 2002년 1월 복교, 2002년 9월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재개설
아프칸에 대한 보다 자세한 개황,역사를 알고 싶으시면 http://blog.daum.net/sanmandi/의 역사정치군사제대로 보기중 아프칸의 역사와 현재를 참고 하시면 됩니다. (끝)
2007.8.12 Sanm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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