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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식/책읽기

[독서]김명리 시집 『바람 불고 고요한』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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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갈하게 다듬은 시어로 존재의 쓸쓸함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노래해 온 시인

 
바람 불고 고요한(문학동네시인선 179)
시집은 총 네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자연물을 통해 느끼는 생명의 작은 기미들과 인간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2부는 어머니라는 소중한 대상을, 3부는 우리 주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연약한 몸을 지닌 동물들을 바라본다. 4부는 이 모든 시상을 아우르는 작품들로 존재를 향한 연민 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저자
김명리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2.09.07

 

1983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정갈하게 다듬은 시어로 존재의 쓸쓸함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노래해온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출판사의 시집 소개 글이다. 

 

김명리시인은 1959년 대구 출생. 1983년 『현대문학 6월호』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 『물보다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제비꽃 꽃잎 속』의 다섯권의 시집과 산문집 『단풍객잔』 이 있다. 

 

 

 

목차

1부 바람 불고 고요한

앵두/ 앵두꽃/ 풀의 무게/ 바람 불고 고요한/ 이월 블루스/ 저렇듯 작은 기미들이/ 산자락 아래 봄 햇살/ 봄날, 노근란도를 그리다/ 진눈깨비/ 파위교/ 초롱이 생각/ 춘몽/ 무화과는 미풍에 시들어가고/ 먼 강물과 덜컹거리는 산그늘과 분홍수련과/ 한날한시/ 몬순 시절/ 산유리에 해가 진다/ 밤의 해변에서

2부 포무의 세계

김치박국 끓이는 봄 저녁/ 이 별에서 붐비는 것들/ 밥꽃/ 피었는가 하면/ 토마토/ 빗낱에 씻기는 항아리들/ 추석 명절 오후/ 대나무꽃/ 엄마/ 드림캐처/ 작별인사/ 과녁/ 포무의 세계/ 월담

3부 혹은 당신 혹은 고양이

노래가 왔다/ 세상의 오후/ 혹은 고양이 혹은 당신/ 고양이장마/ 불 꺼진 눈/ 한계령/ 봄의 파동/ 향기의 집은 어디일까/ 그 나무 아래 햇빛/ 잔반/ 고양이 밥값/ 시월 오후/ 오줌 누고 똥 누는 일의 신성/ 혹은 당신 혹은 고양이

4부 꽃잎 너머

랑탕 크레바스/ 꽃잎 소리/ 냉담/ 끝없는 오후/ 여행/ 나뭇잎 엽서/ 겨울 선착장/ 모과의 눈/ 夢/ 낮달/ 나의 죽은 개를 위하여/ 흉터/ 저 빨강색이 코치닐이란 말이죠?/ 노래가 쏟아지는 오후/ 또 한 잎 검은 모란/ 성대/ 삶이라는 극약/ 비밀 중의 비밀/ 꽃잎 너머

해설 | 언어 세공의 트윈 픽스, 그 문학사적 의미

정과리(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돌아보면 돌이 되는 길/막막하고 가엾은 시간들을/나 걸어왔으리/아득히 홀로 여기에/이 슬픔에 이르렀으리/탄식과 비탄 속에서도/햇빛은 좋았네/바람은 때때로 잠잠했었네/당신은 거기에서/나는 여기에서/꽃잎처럼 또 흩어져가리

2022년 9월 김명리

 

작가의 말은 시집을 읽는데 등대 역할을 해 준다. 결국 시간의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돋아나고 이 순환은 롤러코스트처럼 오르내리며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은 한 영혼을 꽃잎을 보듯 만나는 흥미로움이 있다. 자, 여행을 떠나자. 

 

시집은 「앵두」부터 시작한다. 앵두에 다섯가지 맛이 다 들어 있는지는 모르나 신맛과 단맛이 들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색깔은 푸른(초록) 색에서 붉은 색으로 익어 간다. 김명리 시인(이하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기억을 이끌어 내고 지구에 정박한 소행성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시인의 시를 따라 읽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앵두꽃」에서처럼 해거리를 할 때도 있으니 미리 마음을 다스리란다. 이스라지, 이스라지, 이스라지, 고향 집 우물가에 빨갛게 달린 열매의 추억을 소환한다. 빨강색의 향연을 그래서 시인은「저 빨강색이 코치닐이란 말이죠?」에서 한 번 더 노래한다. 

 

「풀의 무게」가 있다. 풀이 주는 숨어있는 강한 생명력은 씨앗에서 나온다. 그러나 자라 난 푸른 잎을 단 초록의 풀에서는 씨가 안 보인다. ‘풀의 무게란/ 잠시 번성했던 초록의 무게/입술을 열면 타버릴 것 같은 세월도 데리고 간다’고 시인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 가는 시간 위를 걷고 있다. 이제 씨앗이 보일 가을이 왔다. 잎과 꽃과 씨앗의 순환 또는 생명의 연결 고리는 인간이 나고 죽는 고리를 함축한다. 그 연결고리는 시간(세월) 위에 서 있다. 풀의 무게는 결국 시간을 끌고 가는 힘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마당 귀퉁이 애옥(愛獄)살던 풀씨들이’보이면 된다. 

 

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마당의 모과나무에/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이대로 죽음이/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바람 불고 고요한」 전문

시집의 표제시다. 죽은 듯이 서 있던 모과나무에서 새 잎이 돋아 났지만 애타게 기다린 꽃은 피지 않았다. 그러나 꽃이 피지 않는다고 모과나무가 죽은 것이 아니다. 그 삶과 죽음의 팽팽한 긴장속의 적막의 순간을 시인은 들여다 보고 있다. 삶이 떠나는 여행을 어쩌지 못하는 죽음,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절정의 적막속의 봄 마당에 시인은 모과나무의 부활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꽃이 피지 않으면 어떠랴, 해거리 중일 텐데. 내년에는 꽃이 피겠지. 바람과 햇빛이 만들어 준 후원(스폰서)으로 하늘을 향해 밤낮에 걸쳐 공연을 하고 있는 모과나무다. ‘아득히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바람의 말」,마종기)을 듣는 시인이 봄 마당에 서 있다. 내년 봄을 기다리는 시인은 또 다시 죽음이 삶을 배웅 나가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늦가을인지 겨울인지‘모과 한 알/책상 위에 올려 놓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인이 「모과의 눈」과 마주 앉아 있다. 

 

밤이면 인기척이 없어도/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가 있는데/센서를 가동하여 등을 켜는 놈들은/대개가 무당벌레들이다/거기가 사랑을 나누는 최적의 장소인 듯/불이 들어올 때의 이 녀석들은/암수 한 쌍이 바짝 들붙어 있다/잊혀진 기억들 문득 되살아나/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때도/저렇듯 작은 기미들이/영혼과 신체의 재봉선,/그 어스름 내린 불수의근에 가만가만/황홀한 센서 등을 켜는 것은 아니겠는지! 

「저렇듯 작은 기미들이」 부분

무당벌레는 빛을 특별히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진딧물을 먹이로 삼고 알을 많이 낳는다. 그러니 사랑을 나누는 기회도 많다. 집 주변에 날아 들어 사랑을 나누는 무당벌레가 센서에 잡혀 불까지 켜 준다. 불을 켜는 것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불수의근이라며 무당벌레와 또 한 바탕 너스레를 떤다. 

 

마당가 물앵두꽃 피고 수수꽃다리 향기 가득할 때 떠난다 사월 봄하늘에 온몸으로 투항하는 저 꽃잎들하며 내 속에 없는 나까지 온통 싸매고 가서 그곳에 부려두고 오리라 외롭고 높고 캄캄할 만 리 이역의 햇빛 속을 장대한 매의 그림자로 가로지르리라 먼지바람 이는 황량지몽의 세월교를 스치며 그 누가 진흙사람의 눈물을 보았다 하리 창천을 휘덮는 옥수수 댓잎 엮어 나 오래오래 피리를 불리라 백 년 후에, 백만 년 후에 돌아오리라

「여행」전문

 

마당가 물앵두꽃(양벚나무꽃) 피고 수수꽃다리(라일락과 다른) 향기 가득할 때 떠난다 

사월 봄하늘에 온몸으로 투항하는 저 꽃잎들하며 내 속에 없는 나(我)까지 온통 싸매고 가서 그곳에 부려두고 오리라 

외롭고 높고 캄캄할 만 리 이역(3927킬로미터 떨어진)의 햇빛 속을 장대(壯大)한 매(鹰ying)의 그림자로 가로지르리라 

먼지바람 이는 황량지몽(黃粱之夢=一場春夢) 의 세월교(歲月橋)를 스치며 그 누가 진흙사람(土人)의 눈물을 보았다 하리 

창천(蒼天)을 휘덮는 옥수수 댓잎 엮어 나 오래오래 피리(笛)를 불리라 

백 년 후에, 백만 년 후에 돌아오리라

 

시에 행을 주고 한자를 붙여 보았다. 그야말로 춘몽이 드러난다. 그 춘몽은 시 「춘몽」과는 다르게 죽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삶과 죽음의 배웅이 교차한다. 죽음은 길고 삶은 짧다. 삶은 황량지몽이고 죽음은 영원이다. 「피었는가 하면」 지더라는 시인의 자각이 만들어내는 시다. 우리는 미리 이런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그러나 시인은 화사한 봄날에 (죽음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끝은 또 다른 부활이다. ‘잎 진 목련나무/텅 빈 가지속으로부터 시작되는 포무(苞茂)의 세계’ 「포무의 세계」를 시인은 이미 보고 있다. 잎 진 나무에서 꽃망울을 품은 세계, 그 속에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특히 어머니)이 담겨 있다. 

 

눈물없이 읽기 힘든 시가 있다. 

오줌 누려고 일어났으리라/갓 돌 지나 입양한/아스퍼거 앓는/스무 살 어린 아들의 나뭇잎 같은 손이/숯덩이 같은 나의 잠 위로/가만가만 이불을 덮어주고 있으니/너에게로부터 내 안으로/끝없이 흘러내리는 물방울… 저 물의 방울들/오늘만은 눈부시리, 눈꺼풀 속까지/아마포처럼 감겨오는 저 새벽빛!

「삶이라는 극약」 부분

 

마지막으로 「밤의 해변에서」를 읽는다. 

새벽 두시 바다에 이르렀다 휘황한 밤이다/잠들지 않는 아이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불꽃놀이 한창인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부서진 조가비들이 사람의 맨발보다 먼저/아얏, 비명소리를 지르는 밤의 해변/먼 바다 고깃배들의 탐조등 등빛 쪽으로/봉두난발 파도 소리, 내 마음의 철천지원수들/ 희희낙락 떠내려가는 소리/영금정 누각 위로/어둠이 방동사니 풀처럼 휘청거릴 때/내몰하는 파도의 저 이백 미터 상공 위로/막사발만한 달이 떴다//캄캄해져라, 마져 캄캄해져라/확 채어서 그대로 내동댕이치고픈 상현(上弦) (전문) 

 

『모:든시』 2018 가을호에 발표 되었던 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내몰하는’한 단어에 딱 잠겼다. 허우적 대다가 시인께 직접 물었더니 내몰(內沒)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자를 이용해 만든 말이다. 일반인들이 속초에 새벽 두 시에 갈 일이 있나? 시인은 이 시각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마음속은 복잡하고 오감이 교차하고 그 중에서도 슬픔이 더 커 보였는데 이 마음을 다시 뒤집어 놓는 파도 소리가 있다. ‘파도여 춤을 추어라 파도여 슬퍼 말아라’고 패티김이 노래하는 것 같다. 파도의 형태를 보자. 거대하게 몰려 오다가도 휘어져 내리는 것은 바로 자기 몸(물) 속으로 소멸(消滅)되어 가는 것이다. 그 사라져 가는 곳 위에 막사발만한 달이 떠 올라 있다. 시인은 캄캄해지라고 어둠의 어둠속을 부른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과는 반대로 상현은 더욱 밝게 빛난다. 캄캄한 어둠의 밑바닥에서 건진 상현달을 시인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속초 여행이다. 초승달이 지난 상현달이 하늘 위에 떠 있을 때마다 「밤의 해변에서」가 생각이 날 것이다. 

2022.10.04. 아침에 이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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