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리 시인의 시 : 「풀의 무게」>
「풀의 무게」
마당에 내 놓은 빈 화분에서/어느 틈에 풀들이 자라고/웃자란 풀들/가을볕 틈서리에서 골골거리며/다시 시들어간다
심은 적 없는 풀들이/고만고만한 가냘픈 허우대로/허공의 무게를 떠받치고 섰으니
꽃대 스러지고 난 흙 속의/또다른 풀씨들이 밀어올린 풀일까/마당 귀퉁이 애옥살던 풀씨들이/마파람에 불리어/빈 화분 속으로 날아든 것일까
지상의 풀이란 풀들은 어디로 불려가서/저 초록을 벗을까/초록의 무게를 내려놓을까
풀의 무게란/ 잠시 번성했던 초록의 무게/입술을 열면 타버릴 것 같은 세월도 데리고 간다
(전문)
『바람 불고 고요한』
김명리지음, 문학동네, 2022.09.07, 124쪽, 10,000원
며칠전 청소 봉사를 하느라 성당으로 갔는데, 거기서 돌구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풀을 보았다. 그 때 이 시가 생각이 났다.
풀이 주는 숨은 강한 생명력은 씨앗에서 나온다. 그러나 자라 난 푸른 잎을 단 초록의 풀에서는 씨가 안 보인다. 바닥에 깐 돌의 아주 조그만 구멍에 씨앗이 들어 가 싹을 띄워 초록잎을 내밀고 당당히 서 있는 풀을 보았다. 이 얼마나 강한 생명력인가.
김명리 시인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 위를 걷고 있다. 이제 씨앗이 보일 가을이 왔다. 잎과 꽃과 씨앗의 순환 또는 생명의 연결 고리는 인간이 나고 죽는 고리를 함축한다. 그 연결고리는 시간(세월) 위에 서 있다. 풀의 무게는 결국 시간을 끌고 가는 힘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마당 귀퉁이 애옥(愛獄) 살던 풀씨들이’ 보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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