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곽병희 시인(이하 시인)과 통화한 적이 있다. 창녕의 고향에 가 있다고 했다. 늙으신 어머니가 고향에서 살고 있기에 돌보러 자주 들른다고 한다. 시인의 나이도 이제 환갑을 넘었으니 어머니의 연세도 꽤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시집을 발간했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2003년 '한국문단'을 통해 등단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2016년 4월 첫 시집 『베이비 부머의 노래』를 발간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올 8월에 두 번째 시집 『도깨비바늘의 짝사랑』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 시집 상재 후 6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여전히 미흡한 두 번째 작품집에 따가운 세상의 눈초리를 달게 받으려 합니다. 또 수년 뒤로 얼마간의 수확을 미루며 하나의 이정표로 삼습니다. 가편(佳篇-글쓴이)의 봉우리에 단번에 오를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오히려 당연한 고통일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독입니다. 우보牛步이지만 일일 우일신一日 又日新의 끈을 다시 조입니다.
2022년 여름 정녕리 우거에서 곽병희
『도깨비바늘의 짝사랑』
저자 곽병희, 황금알, 2022.08.17. 104쪽, 10,000원
시집을 펼쳐보면, 낯익은 풍경들이 많이 펼쳐진다. 우리가 사는 일상 생활속에서 보는 풍경들이다. 그래서 더 잘 읽힌다. 과하지 않은 표현들로 쓴 시들이라 더욱 그렇다.
표제시도 있지만 나는 「물건방조림」이라는 시를 먼저 읽게 되었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고두현 시인이 워낙 이 지역에서의 시가 유명해 쉽게 쓸 용기를 내기조차 힘든 때 시인은 남해문학탐방의 기회에 이 시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이 힘들 때/물건 방조림을 조용히 만나시게/지나간 그리움 하나/오롯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을 테이니/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수비라는데/동구 밖보다 더욱 정면으로 부딪친 방파제에/그 해일, 맥없이 주저앉았지만/그래도 온몸으로 막아내던/방조림의 고난 아름다울 테니”(부분) 라고 해일과 방조림의 자연의 역학관계에서 뽑아내는 힘과 힘의 부딪힘을 만나게 해 준다. 그 많은 세월을 견디고 서 있는 방조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남 남해군 물건리에 있는 이 숲은 17세기에 만들어진 방조림과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숲이다. 방조림은 해일 등 큰 파도를 막아 마을을 보호하는 것이고, 어부림은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를 유인하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150호다. 숲이 750여미터 길이로 만들어져 있는데 팽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고욤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데크가 잘 만들어져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산책하면서 이 시를 생각하면서 걷는다면 더 아름다운 산책이 될 것이다.
「윤장輪葬에 관하여」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등장한다. 매장, 화장, 풍장등의 장례방법은 들어 보았지만 윤장은 처음이다. 시인이 만든 말이다. 일명 로드킬(Road Kill)이라는 동물교통사고사망으로 역사(轢死)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어에서는 가끔 노살(路殺)이라고 쓰기도 한다. 노살당하는 동물들을 생각하면서 쓴 연민의 시다.
「들판의 십자가」를 읽는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에게 물길과 통행길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 안다. 예전에 길이 없었을 때는 지게를 지고 논두렁을 지나 집까지 볏단이나 보릿단을 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렇게 농사 짓는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들판에 난 저 길들이 들판에서는 순교자의 흔적이 되어 순례길처럼 보인다.
산문처럼 보이는 「눈」 이라는 시에서는 지금 60대 초반의 세대들에게 다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회상하면서 쓴 시다. 자랄 때는 아버지에게 포근함 보다는 반항을 키우며 살아 왔던 것 같다. 이제 시인이 그 자리에 섰다. 아니 대부분의 60대 초반이 그 자리에 섰다. 세대의 자리바꿈이다.
「메밀꽃 필 무렵」 에서는 메밀꽃을 보면서 시인의 넉넉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햇살을 나눠 가지는 김장 배추, 무, 양파, 마늘, 시금치들과 함께 같이 살아 가는 지금이 어쩌면 호강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시작을 물고 오는 가을 속으로/메밀은 희망의 맨 앞줄에서 살아” 가는 것처럼 시인도 맨 앞줄에 서서 살아 가고 있다.
이 시집 속의 시(詩)들에는 전반적으로 시인이 가진 세상을 보는 연민의 눈과 함께 농촌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이 겹쳐 있다. 동시에 이주민들에 대한 연민도 공존한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곽병희 시인의 시집 『도깨비바들의 짝사랑』의 표제시를 마지막으로 읽는다.
잘난 인물과 향기로/벌나비를 유혹할 수 있었더냐/가볍고 유연하여/마음의 돛배를 탈 수 있었더냐/보풀보풀 털을 붙들어야지/싫다 하여 얼굴 찌푸리지만/자꾸만 내동댕이쳐 버리지만/결국 짝사랑으로 끝날 운명이지만/그것으로라도 벌어 먹고 살아야지/외곬의 사랑은 불안한 법/그의 거부의 순간에 너는/대지의 품에 안긴다/도와주지만 책임지지 않는/의타의 길을 또렷이 기억하렴
「도깨비바늘의 짝사랑」 전문
2022.10.07. 이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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